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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정일애국주의에 대한 이야기』중에서
1. 김정일애국주의-사회주의적애국주의의 최고정화 1) 김정일애국주의의 참뜻 -가장 적극적이며 희생적인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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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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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정일애국주의에 대한 이야기』중에서

 

 

1. 김정일애국주의-사회주의적애국주의의 최고정화

 

1) 김정일애국주의의 참뜻

 

가장 적극적이며 희생적인 헌신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이라는데 김정일애국주의의 또 하나의 참뜻이 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애국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이고 투신이다.》라고 교시하시였습니다.

애국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뜨겁고도 열렬한 사랑의 마음으로서 그것은 무한한 헌신과 투신을 동반하게 됩니다. 원래 애국에 대하여 말할 때 사랑과 헌신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사랑이 열정적이고 뜨거운 인간의 감정이라면 그 열도는 바로 실천을 의미하는 헌신에 의해 규정되기때문입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만으로는 참다운 애국자가 될수 없습니다.

애국은 결코 우국이 아닙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만으로는 애국의 길에 나설수 없기때문입니다.

말로써는 하루밤사이에 만리장성도 쌓을수 있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것입니다. 실천이 없이 말만 하여서는 종이장 하나도 옮겨놓을수 없다는것은 하나의 리치입니다.

진정으로 애국을 하려면 애국의 마음을 가지고 애국적인 행동을 하여야지 빈말이나 빈구호를 웨치는것은 아무런 의의가 없습니다.

김정일애국주의에는 조국과 인민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사랑할뿐아니라 조국을 세상에서 으뜸가는 인민의 락원으로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이 담겨져있습니다.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이라는데 김정일애국주의의 참뜻의 하나가 있습니다.

마를줄 모르는 샘에는 영원한 원천으로 되는 깊은 줄기가 있기마련입니다.

몇달, 몇해도 아니고 온 생애를 줄기차게 관통해온 김정일장군님의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은 그이께서 지니고계신 뛰여난 자질이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책임감만으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한생을 어떻게 사는가 하는것은 인생에 대한 견해와 관점에 귀착됩니다. 말하자면 생에 대한 견해와 자각이 인생의 전 과정은 물론 삶의 매 순간순간을 결정하는것입니다.

위대한 인생은 위대한 인생관의 구현과정입니다. 인생에 대한 견해와 관점이 숭고하면 할수록 그 인생은 만사람의 찬양과 력사의 공인을 받는 숭고한 생으로 이어지기마련입니다. 인류력사에 이름을 떨친 명인, 위인들의 생애가 높이 평가되고 사람들의 추억속에 길이 남아있게 되는것도 그들의 한생이 남다른 인생관에서 출발하였기때문입니다.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인생관은 이 세상 그 어느 명인의 인생관에도 비길수 없는 참으로 고결한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며 한생을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것이 우리의 인생관이라고 교시하시였으며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것이 자신의 인생관이라고 교시하시였습니다. 그리고 일군들에게 조국과 혁명, 혁명가들과의 관계를 아름드리거목과 그에 마를줄 모르는 영양소를 보장하는 뿌리와의 관계에 비유하여 교시하시면서 혁명의 뿌리가 되자, 이것이 오늘 우리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인생관이라시며 자신께서는 동무들과 같이 우리 혁명의 억센 뿌리가 되려고 한다고 혁명가가 지녀야 할 값높은 인생관에 대하여 밝혀주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교시하시는 거목은 곧 부강하고 번영하는 조국이였습니다. 인민의 행복이 무르익고 나라의 국력이 세계에 떨쳐지는 강성국가가 바로 그이께서 교시하신 무성한 거목이였습니다.

그 거목을 받쳐주는 뿌리가 되자는 장군님의 교시에는 행복을 누리는것보다 조국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바치는것을 더 큰 보람으로 여기고 누가 알아주건말건 조국과 인민을 위해 헌신해야 하며 여기에 더없는 보람과 행복이 있다는 그이의 숭고한 인생관이 집약되여있습니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걸머지시고 무성한 거목을 떠인 뿌리처럼 한생을 엮어오신 김정일장군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생각할수 없는 인생관입니다.

장군님에게는 오직 인민에 대한 복무만이 있었을뿐입니다. 그이께서는 자신을 인민의 복무자, 인민의 심부름군으로 여기시였습니다.

나는 끼니를 번져도 좋고 얼어도 좋으며 힘들어도 좋다, 인민이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으며 행복할수만 있다면 더이상 바랄것이 없다, 인민을 행복하게 하고 인민의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한생 뿌리가 될것이다! 장군님의 이 고결한 인생관이 그이로 하여금 위대한 헌신의 한생을 사시게 하였던것입니다.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의 위대한 헌신의 바탕에는 바로 부강조국을 받드는 뿌리로 살아야 한다는 숭고한 인생관이 놓여있는것입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김정일애국주의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으로 되는것입니다.

력사에는 조국에 대한 헌신에 대하여 이야기한 위인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습니다.

《자기 조국의 복리를 위한 투쟁에서 병사가 되여야 한다.》고 개인이 조국앞에 지닌 의무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도 있었고 《조국에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자, 쉽사리 조국과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국을 위해 죽는것은 즐겁고 영예스럽다.》고 하면서 조국을 위한 생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처럼 조국과 인민에 대한 위대한 헌신으로 자기의 한생을 빛내인 그런 령도자는 없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제일먼저 맞으신 조국의 새벽, 불타는 열정으로 보내신 낮과 밤, 끊임없이 찾고찾으신 초소와 일터들, 군대와 인민이 있는 그 어디에나 그이의 애국헌신의 일화가 무수한 하늘의 별처럼 새겨져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참다운 애국으로 간주하신 헌신은 무엇보다도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순간의 휴식도 없이 정력적으로 사업하신 가장 적극적인 헌신입니다.

옛적부터 신로군일이라는 말이 전해져내려오고있습니다. 신하들은 일하고 임금은 편히 지낸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공화국의 현실에서는 그 말이 정반대로 되였습니다. 령도자가 누구보다 정력적으로 근로하시였고 그것이 곧 온 나라 전체 인민의 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세계에는 낮과 밤, 휴식일과 명절날이 따로 없었습니다.

명곡 한편한편, 명장면 하나하나를 위해 창작가들과 함께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이시던 1960년대의 그 나날들에 이어 위대한 주체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실 원대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끝없는 사색과 탐구, 정력적인 령도로 낮과 밤을 보내시던 지난 세기 70년대, 창조와 번영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나가시던 80년대로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변하지도 않고 식지도 않고 더욱더 열렬해진것이 인민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열도입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교시하신적이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일감이 가득 쌓여있으면 걱정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흐뭇합니다.

사실 일감이 많다는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우리 수령님께서 갓쓰고 하늘소타고 시조나 읊조리던 조상탓만 하지 말고 남들이 한걸음 갈 때 우리는 열걸음, 백걸음을 가야 한다고 하신 당부를 지키려면 우리모두가 더 부지런히 일해야 할것입니다. 나는 오직 인민을 위하여 수령님의 당부대로 한평생 일감에 파묻혀살려고 합니다. …

한평생 일감에 파묻혀살려고 한다, 바로 이것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한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시겠다는 맹세를 지켜 장군님께서는 비오나 눈오나 바람이 부나 인민을 찾고찾으시였고 잠도 휴식도 잊으시였으며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일하고 또 일하시였습니다.

1998년 정월의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나날에 있은 이야기입니다.

15일밤 800리 밤길을 렬차로 달려 다음날 아침에 강계역에 도착하신 장군님께서는 도착하신 즉시 렬차집무실에서 책임일군으로부터 도의 실태를 보고받으시고 도의 경제발전에서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곧 현지지도단위인 북천의 띄우개식발전소로 향하시였습니다.

아침 9시에 이곳에 도착하신 장군님께서는 쇠붙이에 손을 대기만 하면 떡떡 얼어붙는 강추위속에서 맵짠 강바람을 통채로 맞으시며 강물우에 떠있는 발전소를 구체적으로 돌아보시고 이어 장강군으로 가시여 장강1호발전소와 산골짜기에 있는 토목식언제발전소 그리고 장강2호발전소와 전기화된 주택마을, 장자산발전소를 차례로 돌아보시며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하고 인민생활에 필요한 전기문제를 풀데 대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오전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장군님께서 렬차에 오셨을 때는 오후 사업을 시작하기로 계획한 시간까지 20분밖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시간이 얼마 없는데 빵으로 간단히 요기나 하자고 하시며 검소한 점심식사를 15분도 못되는 짧은 시간에 끝내시고 곧 어느 한 련합기업소로 떠나시였습니다. 이곳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였을 때에는 산골의 짧은 겨울해가 서산에 걸리고 사위에 땅거미가 깃들기 시작한 저녁녘이였습니다.

밤새 렬차행군을 하시고 아침부터 순간의 휴식도 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의 건강이 념려되여 일군들이 오늘 현지지도는 그만 끝내셨으면 좋겠다고 청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승용차에 오르시여 전조등으로 길을 밝히시며 다음 대상인 북천3호발전소로 향하시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하신 북방의 눈보라강행군길은 산천초목도 보기 드문 폭우와 혹심한 무더위에 허덕이던 2007년, 2008년의 그 잊지 못할 여름들의 삼복철강행군길로 이어지고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온 나라에 지펴올리시며 2009년에 정초부터 단행하신 초강도강행군으로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주체98(2009)년 정초에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을 찾으신 때로부터 불과 10일안팎에 원산과 대안으로, 평양시안의 경공업공장들과 인민군부대, 룡악산유원지로 눈보라강행군을 단행하시였습니다.

동봉과 흥남지구에 가시여 비약의 날개를 달아주신데 이어 흥남에서 천수백리를 달려 락원으로, 평안북도에서 다시 원산으로, 동해 2 000리를 꿰질러 김철과 라남, 무산을 련이어 찾으시였습니다. 만포에서 백두산기슭으로, 또다시 수천리강행군을 단행하여 황철, 덕천, 재령, 희천, 안주, 구성 등지에로 현지지도의 로정을 이으시였습니다.

녕원, 연사, 남흥, 단천, 길주, 함주, 고산, 북창, 구장, 경성, 명천 등 나라의 방방곡곡을 폭풍쳐 달리신 장군님께서는 한해가 저무는 섣달에 들어와 더욱 비상한 열정으로 강계시내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신데 이어 다음날에는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곡산공장을 찾으시고 또다시 머나먼 최북단 라선땅으로, 김철과 성강으로 줄기차게 달리시였습니다. 그야말로 로정에 있어서 천문학적인 초강도강행군이였습니다.

장군님의 현지지도는 년초의 대소한의 추위와 삼복의 무더위를 결코 피하지 않았습니다. 차체를 얼구는 강추위에 더운 방을 찾지 않으시였고 확확 달아오르는 무더위에 시원한 덕수터를 찾지 않으시였습니다. 가셔야 할 곳, 보셔야 할 단위가 너무도 많아 명절날도 바람부는 북방의 포전머리에서 몇알의 구운 감자로 끼니를 에우시였습니다.

장군님도 인간이십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인간도 누리는 최소한의 휴식마저 마다하시고 오로지 자신의 모든것을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바치시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사업하는 시간, 휴식하는 시간이 구별되여있고 국가적으로도 휴식일이 제정되여있으나 장군님에게만은 휴식과 명절이 따로 없었습니다.

달리는 승용차안에서, 기차안에서, 배우에서 일군들을 만나시고 문건을 처리하며 회의를 소집하고 과업을 주군 하시였고 늘 바삐 일하군 하시였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동료들에게 우리는 8시간 로동을 위하여 투쟁하지만 우리들자신은 빈번히 하루에 그 2배나 더 일한다고 말하군 하였습니다. 그러한 근로대중을 위한 노력의 결실로 나온것이 《자본론》을 비롯한 많은 저서들이였습니다.

레닌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닌은 로씨야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언제나 긴장한 나날을 보내였습니다. 특히 1917년 10월혁명이 승리한 날 밤에는 토지법령을 작성하느라 두세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쓰딸린도 전쟁개시 9일동안에 하루에 12~16시간 일하였다는 이야기가 후일 사람들속에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력과 헌신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밤새워 일하고나면 그 후과를 가시기 위한 다문 몇시간의 휴식시간도 있었고 하루 두세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한 나날도 한생의 몇순간이였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은 오직 조국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이것만을 인생의 둘도 없는 목표로 정하시고 시간도 정력도 바치고 또 바치시며 바치는것을 기쁨으로 안고 일생을 사시였습니다.

어느날엔 우리 걸음이 한걸음 떠지면 그만큼 조국의 전진이 떠지게 된다고, 날씨를 보아가면서 편안한 길을 갈수 없다고 하시며 떠나시였고 어느날에는 로동계급이 보고싶다시며 한밤중에 먼길을 나서기도 하시였습니다. 인민들의 건강문제가 걱정되시여 무더기비를 헤쳐가시며 강행군을 이어가신 날도 있었습니다.

순간의 휴식도 없이 험한 령길도 넘으시고 때로는 지척도 분간할수 없는 무더기비와 무더위를 헤치시며 함경남도와 함경북도, 자강도로 종횡무진하신 장군님의 령도의 자욱자욱은 눈물없이는 더듬을수 없는 위대한 헌신의 자욱입니다.

무서운 폭열속에 땀에 젖은 야전복이 마를새없이 초소를 찾으시고 공장과 농촌을 찾으시는 그이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와 인민들은 백번천번 뇌이던 장군님 또 오시라는 말이나 생각을 마음속에 묻어두군 하였습니다.

만나뵙고 그이의 로고에 찬 모습을 우러르면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하며 마음속소원을 물기어린 눈빛으로 아뢰는 병사들과 인민들에게 오히려 장군님께서는 나를 생각하는 병사들과 인민들의 마음은 고맙습니다, 그러나 병사들과 인민들을 위해서 내가 땀을 흘린것이 무슨 큰일이겠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이런것을 고생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나의 병사들과 훌륭한 인민을 위하여 땀을 흘리며 강행군할 때가 제일 마음이 편하고 백날을 호강하는것보다 더 좋습니다라고 교시하군 하시였습니다.

이렇게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평생 1만 4 290여개의 단위를 찾으시였고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지구둘레를 근 17바퀴나 돈것과 맞먹는 167만 4 610여리의 강행군길을 걷고걸으시였습니다.

하기에 언제인가 미국에서 사는 한 해외동포는 공화국을 방문하여 가는 곳마다 장군님의 헌신의 자취가 어려있는것을 목격하고 어디 가나 그이의 높은 뜻과 사랑이 어려있는 거룩한 땅이니 이 성스러운 지역을 차를 타고 지나기가 송구스럽다, 신발을 벗고 땅을 디뎌야 마땅하지 않겠는가고 격동된 심정을 토로한바가 있습니다.

이렇듯 김정일장군님의 조국과 인민을 위한 헌신은 인류력사에 있어보지 못한 지극히 고결하고 숭고하며 가장 적극적이고 불같은 헌신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애국헌신은 다음으로 나라와 민족의 안전을 수호하고 조국번영의 위대한 력사를 창조하기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가장 희생적인 헌신입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최대의 헌신은 혁명의 길이 아무리 어려워도 서슴지 않고 한몸바치는 희생적인 투쟁정신과 그 실천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혁명의 길우에는 언제나 준엄한 난관과 시련, 간고한 투쟁이 있게 되며 때로는 가슴아픈 희생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혁명위업에 대한 헌신성은 자기희생성을 동반합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혁명앞에 가로놓인 난관과 시련앞에서 어느때 한번 주저하거나 물러선적이 없으시며 나라와 민족의 안전을 수호하고 인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라 해도 서슴없이 뛰여드시며 불사신마냥 조성된 난국을 타개해나가시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기는 공화국의 력사에서 전례없는 엄혹한 시련과 난국이 겹쌓였던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하여 헤아릴수 없이 커다란 경제적난관이 겹쳐든 그때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공화국을 고립압살하기 위한 책동을 그야말로 미친듯이 감행해나섰습니다.

공화국은 익측도 후방도 없는 상태에서 사회주의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내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조성된 준엄한 난국을 타개하고 사회주의조국을 지키기 위한 근본열쇠를 선군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드는데서 찾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주고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가리라는 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르고 또 부르시며 끊임없는 선군장정의 길을 이어가시였습니다.

그 선군장정의 길은 단순히 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이 아니라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내는 사생결단의 길이였습니다.

초속 20m로 불어오는 강풍에 3m이상 높이로 오르내리는 검푸른 파도를 헤치시며 단행하신 초도에 대한 현지지도와 적아쌍방이 총부리를 맞대고있어 하나의 불꽃이 순간에 불바다로 번져질 상시적인 위험이 서리고 엉켜있는 최대위험지역인 판문점에 대한 현지시찰은 민족운명수호의 사생결단의 길, 선군장정의 길에 새겨진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경지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 이렇게 순간순간이 긴장되고 위험한 길을 수없이 걷고 또 걸으시였습니다.

준엄했던 사회주의조국수호전의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어가신 길은 조국의 운명이 달린 사생결단의 최전연길이였습니다.

모진 난관과 시련도 과감히 맞받아나가며 조국을 위해, 인민을 위해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신 바로 여기에 위대한 장군님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높이가 있습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무한한 헌신으로 일관되여있는것으로 하여 김정일애국주의는 만사람을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참다운 애국의 길로 억세게 떠밀어주는 사상정신적원동력으로 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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