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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선군-사랑의 정치』중에서 3. 선군 ―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치 1)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치방식 -주체의 민족관을 구현한 애족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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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03-03

본문

이북도서 『선군-사랑의 정치』중에서

 

 

3. 선군 ―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치

 

1)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치방식

 

주체의 민족관을 구현한 애족의 정치

선군정치는 전체 조선민족의 리익을 옹호하고 지키는 겨레사랑의 정치이다.

민족성원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는 자기 민족의 운명에 관한 문제이다.

민족의 운명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민족의 자주성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들이 운명적으로 하나로 밀접히 련관되여있는 운명공동체로서의 민족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며 민족의 자주성이 실현되여야 개별적사람들의 자주성도 실현될수 있다.

자주성을 가지는가 못 가지는가, 그것을 어떻게 옹호하고 실현해나가는가 하는데 따라 민족의 운명이 좌우되게 된다. 때문에 민족의 자주성은 민족의 존재와 번영을 담보하는 민족의 생명이라고 한다.

바로 자주성을 민족의 생명으로 보고 온 민족이 단결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며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여야 한다는것이 주체적민족관이다.

주체의 민족관에서 핵을 이루는것은 민족의 자주성, 민족적자주권에 대한 열렬한 옹호이다. 사람들이 운명적으로 하나로 밀접히 련관되여있는 운명공동체로서의 민족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며 민족의 자주성이 실현되여야 개별적사람들과 그 민족안의 모든 계급, 계층의 자주성도 원만히 실현될수 있다.

민족이 있고서야 나라도 있고 번영도 있는것이다. 혁명도 민족의 리익을 위해서 하고 사회주의건설도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 한다는것이 조선로동당의 변함없는 립장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러한 민족중시론, 민족우위론에 립각하여 정치방식도 규정하고 민족문제도 풀어나가고계신다.

선군정치는 바로 이러한 주체의 민족중시론, 민족우위론을 구현한 애족적인 정치방식이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지키고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투쟁은 반드시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유린하고 침해하려는 력사의 반동들과의 대결을 동반하게 되며 강력한 힘에 의거할 때만이 그 투쟁에서 승리할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강력한 힘이란 본질에 있어서 총대의 위력이다.

세상에는 자기 힘으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할수 있는 민족과 그렇지 못한 민족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다. 또한 민족의 운명이 결코 그 어떤 숙명에 의하여 결정되는것은 더우기 아니다.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기 민족을 지킬 힘, 강한 군사력을 가진 민족은 그 어떤 경우에도 민족의 운명을 고수하고 빛내여나가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민족은 자기 운명을 지켜낼수 없으며 결국 민족성원들은 식민지노예의 처지에 굴러떨어질수밖에 없다.

총대가 강하면 민족의 운명이 지켜지고 민족의 존엄이 빛나지만 총대가 약하면 민족의 존엄이 유린말살되고 망국노의 운명을 면치 못한다는것은 지난날 우리 민족의 치욕의 력사가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조선반도는 지리적특성으로 말미암아 력대로 주변렬강들의 침략대상으로 되여왔다.

1866년의 미국침략선 《셔먼》호의 침공과 같은 해 프랑스의 무력침공(병인양요), 1871년의 미국의 대규모무력침공사건(신미양요) 등 조선반도를 노린 유미렬강들의 침략책동은 19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악랄하게 벌어졌다. 여기에 뒤늦게 자본주의의 길에 들어서서 《정한론》을 부르짖는 일본의 침략책동 또한 악랄하게 벌어졌다.

남들이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 대형군함을 만들어 대양을 횡단하고있던 때에도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어지럽혀온 리조봉건통치배들은 외세의 침략책동으로 하여 민족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였던 19세기 말엽에조차 군사력을 추켜세워 제힘으로 나라를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당파의 정치적야욕을 실현해보려고 저저마다 외세를 등에 업고 더러운 목숨을 유지하려 하였다.

군사력을 강화하는것은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고 부강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근본담보이지만 부패무능하고 썩어빠진 리조봉건통치배들은 나라의 군사력강화에 응당한 힘을 돌리지 않았다.

자체의 민족군대가 약한데다가 통치배들자체가 극도의 사대주의에 물젖어 친일파가 득세하면 일본군대가 왕궁을 지키고 친로파가 득세하면 짜리로씨야군대가 임금을 호위하고 친청파가 득세하면 청나라군대가 대궐의 파수를 서는 판이였다.

당시 일본은 《명치유신》후 국내에서 파쑈적탄압을 강화하는 한편 제국주의렬강들을 등에 업고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나라들에 대한 발광적인 침략책동에 나섰다. 《함선건조 10개년계획》이라는것을 세우고 1896년부터 청일전쟁에서 받아낸 배상금을 포함하여 17억¥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군사비로 쏟아부은 일본은 1905년에 이르러 6 000t급이상의 최신군함만도 12척에 현대적인 무장장비를 구비한 20만명의 륙군상비무력을 갖추었다.

이 방대한 무력을 배경으로 일본은 리조봉건정부에 망국《조약》을 강요하려고 로일전쟁에 투입했던 저들의 기본병력을 서울에 끌어들이였다.

그때 서울에는 일본군의 보병 3만명, 기병 800명, 포병 5 000명이 투입되였다.

이에 비해 조선군대의 병력수는 서울에 2개 련대 5 000명과 지방에 8개 대대 약 2 000명을 합쳐 7 000명정도에 불과했다. 이것은 한개 사단의 병력에도 미치지 못한 무력이였다.

이렇게 작은 군대마저 제대로 군사교육조차 받지 못하였으며 무장장비도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조선군대의 기본무장장비는 창과 활, 화승대였다.

1882년부터 리조봉건정부는 다른 나라들에서 얼마간의 소총과 탄약 등을 구입해왔으나 청일전쟁때 일본군에게 대부분 빼앗기고 그나마 남아있던 무기와 탄약도 모두 일본군의 관리하에 있어서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군력으로 나라를 지키고 민족의 운명을 고수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이였다.

나라는 고사하고 왕비의 침전을 지켜줄 파수병마저 변변치 못했던탓에 일제살인마들이 왕궁에 란입하여 왕후를 불태워죽인 을미사변이라는 비극을 당하면서도 항거 한마디 못하였다.

일제에 의하여 1905년 11월 최고주권자인 고종황제의 비준도 옥새날인도 찍지 않은 《을사5조약》이라는 망국《조약》을 강압날조당하였으며 뒤이어 1907년 7월의 《정미7조약》으로 조선의 내정권까지 빼앗기고 렬세하기 그지없던 군대마저 강제해산당하였다.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의 강압날조로 500년의 력사를 가진 리조봉건국가는 완전히 종말을 고하고 황제의 통치권은 일본《천황》에게로 모조리 넘어갔으며 이 나라 백성들은 《총독제령》에 따라 움직이는 식민지노예가 되였다.

일제에게 침략당하여 식민지로 전락되던 그때 우리 민족의 울분을 담아 터친 《시일야방성대곡》은 국력이 약한 민족의 설음의 분출이였다.

반만년의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사는 하루아침에 망국의 력사로 뒤바뀌여졌다.

이때부터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을 민족의 자주권을 빼앗기고 망국노의 치욕과 설음을 겪으면서 눈물의 바다, 피의 바다를 헤쳐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의 침략으로 인한 식민지통치는 나라를 송두리채 빼앗긴 민족사멸의 위기였다. 국권도 강탈당하고 국토도 자연부원도 빼앗겼다.

이 나라 백성들은 자기 말과 글, 이름까지도 다 빼앗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보수도 기약도 없는 징병, 징용에 끌려갔으며 애어린 처녀들도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끌려가 정조를 유린당하였다.

조선의 애국자들은 조선민족이라는 죄아닌 죄로 구류장과 감옥에서 연덩어리가 달린 소가죽채찍에 얻어맞고 형장에서 숨져야 했고 유구한 력사와 풍요한 자연부원, 수려한 산천경개를 자랑하는 조국강토는 일본제국주의의 군화와 대포바퀴에 짓밟혀 빛을 잃었다.

《시일야방성대곡》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있던 이 땅의 초야와 지붕밑에서 수많은 충신들과 유생들이 망국의 한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름없는 백정까지도 칠성판에 오른 국운을 통탄하며 죽음으로써 일제에게 항거하였고 려염집 아낙네들까지 국채보상운동에 뛰여들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의병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애국지사 리준은 할복자살로써 네데를란드의 헤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장을 붉은 피로 물들여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렬강들이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일제의 조선침략정책을 비호하는데 대하여 항거하였으며 안중근렬사는 조선침략의 원흉 이또 히로부미를 처단하여 국권을 되찾으려는 조선민족의 기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어느 렬강도 조선독립을 결코 선사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조선인민은 피타는 절규로써는 민족의 운명을 지켜낼수 없다는 쓰라린 교훈을 새겨안게 되였다.

망국은 누구나 원치 않는다. 민족사에 대를 두고 가셔지지 않을 피맺힌 원한의 상처를 낸 망국은 다름아닌 민족의 운명을 지켜줄수 있는 총대가 약했기때문에 초래된 민족의 비극이였고 총대의 무력함이 낳은 력사의 필연이였다.

국력이 약하여 나라를 빼앗기고 망국노의 생활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치욕의 력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높이 추켜든것이 선군의 기치이다.

주체89(2000)년 8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우리 힘의 원천으로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가 일심단결이고 두번째가 군력이다, 군력이 있어야 외국과의 관계를 자주적립장에서 풀어나갈수 있다, 다른 나라와 친해도 군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세에 롱락당한 리조 말엽의 대원군이나 민비신세가 될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교시에는 군력이 약하여 굴욕을 겪은 수난의 민족사가 함축되여있으며 력사를 통하여 검증된 진리가 담겨져있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슬기롭고 이름높던 우리 민족사가 간악한 일제침략자들의 칼에 맞아 원한의 선혈로 토막토막 끊어져나가고 지구상에서 영영 그 존재마저 꺼져버릴번 하였던 그때 식민지민족의 노예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민족재생의 새 생활을 찾아준것도 선군이였고 청소한 우리 공화국을 요람기에 삼키려고 침략의 불구름을 이 땅에 몰아온 미제를 서산락일의 운명에 처넣고 민족운명수호의 승리의 력사를 안아온것도 선군이였으며 20세기 90년대 중엽 조선민족이 또다시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느냐 아니면 자주적인 근위병이 되느냐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처하였던 최악의 역경속에서 민족의 운명을 결사수호한것도 선군이였다.

바로 민족의 운명, 자주권을 수호하고 빛내이며 민족번영의 길을 열어나가려고 제국주의자들의 횡포한 도전속에서도 전체 조선민족을 위하여 공화국의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군력을 불패로 다져왔다.

선군정치로 하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이 굳건히 수호되고 우리 민족은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민족으로, 세계에 대고 제 할 소리를 다하며 자기가 선택한 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해나가는 최강의 민족으로 세계만방에 빛을 뿌리고있다.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오늘의 현실은 선군정치야말로 전민족의 존엄과 리익, 번영을 마련해주는 민족중시,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치라는것을 더욱 굳게 확증해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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