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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6) 중에서 1.2)삼천리를 넘어 세계에 메아리친 선군승리의 대축전 -《아리랑》통일잔치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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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08-09

본문

 

이북도서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6) 중에서

 

1. 선군조선의 존엄과 기상을 더 높이 떨치시려

2) 삼천리를 넘어 세계에 메아리친 선군승리의 대축전

《아리랑》통일잔치와 더불어
 

2005년 8월 풍치수려한 릉라도의 5월1일경기장에서는 조선로동당창건 60돐과 조국해방 60돐을 맞으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내외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성황리에 개막되였다.

보다 더 세련되고 완벽한 모습으로 다시금 세상에 빛을 보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막을 올린 첫 시작부터 전례없는 관람열기를 불러일으켰다.

온 세계가 평양을 진원지로 하는 《아리랑》열풍에 휩싸였다.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남녀로소 누구라 할것없이 공연관람을 위해 구름처럼 평양으로 몰려왔고 아시아와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여기저기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평양행에 몸을 실었다.

민족의 자랑, 인류의 재보로 만사람의 경탄을 자아내는 기념비적걸작에 대한 관심은 남녘땅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 갔다.

한없이 넓으신 도량과 따뜻한 동포애의 정으로 남녘동포들의 이 소원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아리랑》관람의 넓은 길을 열어주시여 민족화해의 새로운 화폭을 펼쳐놓으시였다.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당 부문의 한 책임일군을 전화로 찾으시고 남녘동포들에게 《아리랑》공연을 보여줄데 대해서 가르쳐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들이 오면 우리가 대우를 잘해주면서 구경을 시켜주고 하루밤 재워서 보내면 다 좋아할것입니다.》

일군은 놀라움과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실무적으로 볼 때 선뜻 결심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6.15통일시대가 열린 때로부터 적지 않은 남녘동포들이 평양을 다녀갔지만 그때와는 달리 공연관람자들로 이루어진 대규모집단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내보내고 하는 일을 매일이다싶이 반복해야 했던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실무적인 타산이나 계산에 앞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뜨거운 민족애, 동포애의 립장에서 《아리랑》공연을 보고싶어하는 남녘인민들의 소망을 깊이 헤아리시고 이렇듯 대범한 조치를 취해주시는것이였다.

그것은 단순히 동포애의 정에서 출발한 특혜라고만 볼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조치에는 《아리랑》공연관람을 계기로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더한층 고조시킴으로써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6.15자주통일시대를 힘차게 전진시켜나가기 위한 거족적인 통일열풍을 안아오시려는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었다.

이렇듯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길을 열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공연을 보러 오는 참관단의 명칭을 《평양참관단》으로 부르도록 해주시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통로도 정해주시고 체류기일, 참관장소도 확정해주시였으며 초청영접안내에서 나서는 크고작은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관심과 은정어린 조치에 의하여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조직사업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였으며 2005년 9월 26일부터 하루에 수백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와서 1박2일간에 걸쳐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고 여러곳을 참관하게 되였다.

바로 5년전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채택으로 조국통일의 새로운 전환적국면을 열어주시고 이번에는 《아리랑》으로 화해와 단합의 화원을 온 남녘땅, 아니 온 삼천리에 펼쳐주시는 장군님의 그 하늘같은 사랑을 가슴에 안고 남녘동포들은 너도나도 평양방문의 길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순간 참관단성원들은 한결같이 평양방문이 실현된 꿈같은 현실에 흥분을 금치 못해하였다.

참관단의 한 성원은 우리는 평양에 《아리랑》을 관람하러 떠나기 전에 3일동안 너무 기뻐 잠을 자지 못했다, 이제 《아리랑》대잔치판이 펼쳐질것이다, 5년전 6.15처럼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아리랑》이라는 폭죽을 터뜨려 온 남녘땅을 빨갛게 물들여놓았다, 이남민중의 마음을 한순간에 련북으로 돌려놓으신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참으로 뛰여난분이시라고 흥분에 겨워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평양에 온 남녘동포들의 감동과 흥분은 《아리랑》공연관람에서 최절정을 이루었다.

《아리랑》공연이 진행되는 5월1일경기장은 련일 동포애의 뜨거운 정, 통일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북녘인민들이 《우리는-》 하고 구호를 웨치면 남녘동포들은 《하나다!》라고 화답하고 뒤이어 또다시 《조국-》 하면 《통일》 하고 화답해나섰다.

서로 손을 흔들어주고 울고웃으며 손을 맞잡는 모습은 민족의 통일념원이 얼마나 열렬한가를 페부로 절감하게 하였다.

경기장에서 울려퍼진 그 함성은 그대로 삼천리강산에 굽이친 우리 민족끼리의 메아리였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뜨거운 열기였다.

난생처음으로 민족이 낳은 기념비적걸작을 직접 보고난 남녘동포들은 저저마다 놀라움과 경탄을 금치 못해하며 찬사를 터놓았다.

민족의 향취짙은 대표적민요인 《아리랑》을 주제가로 하여 단 1시간 20분 남짓한 길지 않은 시간에 우리 민족의 100년사를 훌륭한 예술적화폭으로 펼쳐보이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지난날 약하고 힘이 없어 수난과 설음속에 눈물의 《아리랑》을 불러야만 했던 조선민족이 어떻게 되여 오늘과 같이 세계를 굽어보는 힘있는 민족이 되여 행복의 《아리랑》, 강성부강의 《아리랑》을 부르고있는가를 기백넘치는 집단체조와 아름답고 우아한 노래와 군무, 황홀한 교예, 신비한 배경대 등을 통해 완벽하게 구사하는 《아리랑》공연은 실로 인류문화예술발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대성공작이며 민족의 더없는 자랑이였다.

《대단히 훌륭하다. <아리랑>은 예술적으로 아주 걸작중의 걸작일뿐아니라 그 내용의 심오성에 있어서도 완전무결하다.》, 《<아리랑>공연은 세계 그 어느 나라도 흉내조차 낼수 없는 대걸작이다. 여기에는 북의 집단주의정신, 조직성과 규률성이 집대성되여있다. 이 모든것은 김정일국방위원장님에 의해 산생된것이다.》, 《공연을 보면서 아리랑민족의 슬기와 지혜, 위대함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였다. 이런 대걸작을 창작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을 모신 이북인민만이 창조할수 있는 위대한 걸작품이다.》 …

이러한 격동된 목소리는 공연관람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뻐스안에서도 호텔에서도 끊임없이 울려나왔다.

참관단성원들은 저마끔 공연소감을 피력하며 북에 오기를 천만번 잘했다고, 공연이 너무 감동적이여서 눈물없이 볼수 없었다고 하면서 남쪽에 돌아가 북녘동포들의 마음을 널리 전하고 통일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갈 결의들을 다지였다.

남조선신문들도 《<아리랑잔치> 분단을 잊었다》, 《화려한 교예, 흥겨운 연주 <강성한 나라>열망 <꿈틀>》,

《지구최고의 마술, <아리랑>》 등의 제목들을 달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 대한 소개에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아리랑》공연은 시간이 갈수록 온 남녘땅을 뜨겁게 달구어놓았다.

너도나도 평양으로 마음이 쏠리고 발걸음이 향해졌다.

《아리랑》공연을 보고싶어하는 남녘동포들의 소원을 빠짐없이 다 들어주고싶으신것이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심정이였다.

평양참관단성원들을 숙식시키기로 했던 양각도국제호텔에 조선로동당창건 60돐 경축행사에 참가할 국내대표들을 들이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이때 해당 부문의 일군들은 당창건 60돐 경축행사를 보장해야 하는 조건에서 이것은 할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평양참관을 주관하는 남측의 여러 단체들에 숙소관계로 10월 5일경부터 12일까지는 《아리랑》공연관람이 어려울것 같으므로 평양참관단일정을 조절해줄것을 통지했다.

그러자 그들은 당창건 60돐 경축행사기간에 평양에 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고, 자기들은 양각도국제호텔 1개 방에 4명이나 6명이 들어도 좋고 복도를 침실로 해서 한개 층에 수십명씩 숙식하거나 5월1일경기장에서 천막을 치고 자도 좋다고 하면서 평양참관을 계속해줄것을 거듭 간청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양각도국제호텔에 들기로 예정되였던 당창건 60돐 경축행사 국내대표들을 모두 다른 곳에 들도록 하고 양각도국제호텔과 보통강려관을 통채로 남측참관단이 리용하도록 하는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남녘동포들의 평양참관은 중단함이 없이 계속 이어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에 의해 남녘땅에 일어번진 《아리랑》열풍은 참으로 일찌기 볼수 없었던 놀라운 현실을 펼쳐놓았다.

지난 시기 공화국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있던 사람들도 평양에 오지 못해 안달이 나서 몰래라도 오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열심히 공작하는 희극이 벌어졌다. 지어 평양참관단에는 우익보수인물들도 적지 않게 망라되였고 정보원에서 오래동안 일한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남조선의 어느 한 단체의 관계자는 당국이 북으로 달리는 민심에 제동을 걸어보았지만 저들도 《아리랑》에 마음이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어 정보원에서는 오래동안 일한 공로있는 사람들만 골라 표창으로 《아리랑》공연관람을 보낸다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정보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떼를 지어 들어오고 《대통령》까지 변성명하고 들어올것 같다고 하였다.

뿌리깊은 반공화국적대의식에 사로잡혀 북에서 하는 일을 덮어놓고 비난해오던 사람들도 공연의 황홀함에 심취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부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런 세계적인 작품을 결코 그 어떤 강제나 돈으로는 만들어낼수 없다고, 북이 이처럼 강대한줄은 몰랐다고, 통일되면 우리 나라가 단연 우수하고 위대한 최강국으로 될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고 속생각을 터놓았다.

수십명의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와서 공연을 관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도 공연과정에 자기를 잊고 출연자들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면서 《이밤이야말로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행운의 기회》, 《황금을 주고도 보지 못할 천궁의 공연》, 《배경대에 눈 두개, 하늘에 눈 두개를 걸어놓고 보아야 할 공연》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리랑》공연관람길에 오른 남녘동포들가운데는 자기들의 소원을 풀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정을 담아 지성어린 선물을 준비해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록 《아리랑》공연시간은 길지 않았으나 민족분렬 60년간 반목과 불신으로 얼어붙었던 마음들을 신비한 예술의 힘, 따뜻한 동포애로 녹여내는 화해와 단합의 순간이였다.

《아리랑》축전기간에 분렬 60년이래 평양산원에서 첫 남녘아기가 태여나는 반갑고도 희한한 일이 생겨나 온 겨레를 기쁘게 하였다.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대표로 1998년 평양을 방문한바 있는 황선(통일련대 대변인)녀성이 10월 10일 저녁 공연관람도중 갑자기 오는 진통으로 하여 평양산원에 구급으로 입원하게 되였다.

원래 그는 해산예정일이 이미 지난 몸이였다. 그러나 그는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아리랑》공연관람길에 올랐다.

그는 입원한지 1시간도 못되여 밤 10시에 딸(몸무게 3.36㎏)을 순산하였다. 평양산원개원이래 처음으로 남조선녀성이 옥동녀를 낳았다는 소식은 삽시에 전국에 퍼졌고 모두가 평양에서 첫 고고성을 울린 통일동이의 미래를 축복하였다.

남녘동포들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평시에 《아리랑》공연에 대해 침묵하던 남조선의 일부 언론들도 《평양에서 출산한 최초의 남한녀성》, 《황씨가 통일동이를 낳게 되였다》 등으로 이 소식을 크게 보도하였다.

황선녀성은 입원해있는 기간 무상치료제혜택으로 산후치료는 물론 종합적인 의료봉사를 받았으며 공화국의 모든 산모들과 꼭같이 산꿀과 귀중한 보약제, 영양제들을 공급받았다.

산모의 건강상태와 아기의 발육상태는 대단히 좋았다.

10월 25일 아기와 함께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게 된 황선녀성은 평양산원에서 보낸 보름동안의 나날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며 감격과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평양산원 의료일군들의 뜨거운 환송속에 산원문을 나서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뜻밖의 행운으로 평양산원에서 몸을 풀고 귀한 통일동이를 받아안게 되였다. 꿈만 같은 오늘의 이 경사를 안아온 6.15에 감사를 드린다. 6.15는 민족통일의 현실도 반드시 안아올것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동포애의 정으로 저와 딸애를 극진히 보살펴주고 돌보아준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원들에게 저의 진심으로 되는 인사를 드린다.》

남조선에 돌아간 후 황선부부는 아기에게 우리 겨레는 하나라는 뜻에서 《윤겨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처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평양을 방문한 남녘동포들속에서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온 남녘땅을 《아리랑》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녘땅에서 날로 높아가는 《아리랑》관람열기를 헤아리시여 10월말까지 계속 남녘동포들을 평양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주시고 그 방도까지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남조선에서 통일운동에 한생을 바쳐 싸워온 비전향장기수들을 비롯한 통일운동가들을 《아리랑》공연관람에 초청하도록 깊은 관심을 거듭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10월 17일이후에도 남녘인민들의 《아리랑》공연관람사업은 계속 진행되였으며 10월말까지의 한달 남짓한 기간에 무려 8 500여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들어와 공연을 관람하는 류례없는 통일잔치마당이 펼쳐질수 있었다.

참으로 온 남녘땅에 휘몰아친 2005년의 《아리랑》열풍은 남녘인민들을 반세기에 걸친 반공화국악몽에서 흔들어깨우고 북과 남 온 겨레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 통일열풍, 제2의 6.15열풍, 김정일숭배열풍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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