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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 1』중에서 1. 3)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의 나날에 -백범 김구의 인생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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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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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 1』중에서

 

 제    1    장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에서

3.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의 나날에

백범 김구의 인생전환

 

4월남북련석회의의 열기가 아직 식을줄 모르던 주체37(1948)년 5월 3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전날 김구선생과 한 약속을 지키시여 그를 만나주시였다.

바로 전날 쑥섬협의회에 참가했던 김구선생은 장군님께서 시간이 허락되신다면 떠나기 전에 한번 단독으로 만나뵙고싶다는 청을 드렸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아, 그렇습니까.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지요. 래일 만납시다. 래일 시간을 알려드릴테니 만나서 하고싶은 이야기를 더 나눕시다.》라고 약속을 하시였다.

이리하여 이날 그와 단독으로 마주앉으신 그이께서는 평양에 체류하는 기간 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없었는가고 따뜻이 물어주시며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면 우선 건강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순간 선생에게는 평양에 도착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 만나뵙던 때의 일이 되새겨지면서 그저 고맙고 감격스럽기만 하였다.

4월 20일, 잊을수 없는 그날 수령님의 패기와 정열이 넘치는 젊고 건강하신 모습, 천재적인 예지로 빛나는 준수하고 환하신 존안, 한없이 겸허하고 고결하신 덕망에 접하여 선생은 말할수 없이 큰 감동을 받았었다.

해방전 상해에서 림시정부의 주석으로 있었고 해방후 남조선에서 한국독립당의 당수로 정치무대에서 활약한 위풍과 권위, 도고함은 그이를 만나뵙는 첫 순간에 벌써 뜨겁게 쏟아져내리는 해빛에 얼음장이 녹아내리듯이 가뭇없이 사라지고말았다. 하기에 그위대한 수령님께 회의에 늦게 도착하여 죄송하다고 사죄의 말씀부터 드렸다.

남북련석회의에 늦게 참가하게 된것을 미안해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시며 몸소 담배도 권하신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련석회의를 시작하였다가 도착하지 않아서 하루 휴회하였다고, 이제 선생이 와서 회의는 더욱 빛을 내게 되였다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 불편한 점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제기하라고 하시면서 그가 평양에 체류하는 기간 자신의 서기와 부관이 그를 보좌하도록 해주시였다.

이렇듯 회의 전기간 커다란 관심을 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을 이날 떠나기에 앞서 단독으로 다시금 만나뵙게 된 김구선생은 실로 이름할수 없는 감개에 휩싸여있었다. 이미 만경대까지 방문하고 수령님의 할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을 만나뵙고는 세상에 전무후무한 애국적가문에 대한 충격이 하늘에 닿아 격동된 심정을 누를길 없었던 그이기도 하였다.

이날 김구선생과의 담화석상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우리 나라가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의 위기에 직면하고있는것은 전적으로 미군이 남조선을 강점하고 조선에 대한 침략정책을 실시하고있기때문이라고 강조하시고 지난 기간 민족해방과 조국광복을 위하여 몸바쳐 싸워온 우리들이 어떻게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것을 허용할수 있으며 우리 민족이 또다시 외래침략자들의 식민지노예로 되는것을 수수방관할수 있겠는가고, 우리 민족은 절대로 둘로 갈라져서는 안되며 다시금 외래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노예로 되여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 민족앞에 나선 최대의 과업은 미제와 그 주구들의 단독정부조작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민주주의적원칙에서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을 전개하는것입니다.》

투철한 자주독립정신과 민족애가 흘러넘치는 그이의 말씀에 김구선생은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외세에 의해 갈라질 위험에 직면한 민족의 운명을 두고 그렇듯 가슴아파하시며 그 해결책을 명시해주시는 김일성장군님의 애국애족의 세계는 얼마나 높고 숭고한것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 련석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결정에 따라 미제와 그 주구들의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반대하는 전민족적인 공동투쟁을 더욱 강력히 전개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계속하시였다.

《미제의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분쇄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남북조선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이 굳게 단결하여야 합니다.》

이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남북조선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굳게 묶어세워 구국통일전선을 형성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국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목적은 국토와 민족의 영구분렬의 위기를 타개하고 민주주의적인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데 있는것만큼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제를 반대배격하고 자력으로 통일정부를 수립할것을 지향하며 반동적인 테로통치를 반대하고 진보적인 민주정치를 요구하는 진정한 반미애국력량의 집결체로 되여야 한다고 언급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여기에는 당파와 정견, 신앙의 차이를 가리지 말고 로동자, 농민, 지식인, 기업가, 상인, 종교인 등 모든 반미애국력량을 튼튼히 결속시켜야 한다는것과 비록 과거에 민족앞에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오늘 진심으로 자기의 죄과를 뉘우치고 미제의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반대하여 투쟁하려 한다면 그의 과거를 백지화하고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한다는것,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는 모든 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각층 인사들이 호상 자기의 사상과 주의주장을 상대방에 강요하지 말며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며 모든것을 오직 민족공동의 리익과 위업에 복종시키는 원칙을 견지하여야 한다는것을 강조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자자구구 새겨안던 김구선생은 감동에 넘친 목소리로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조국이 없고 민족이 망하면 사상이요, 주의주장이요 하는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파란곡절로 엮어진 지나온 한생의 총화라고도 할수 있는 그의 진정이 담긴 고백이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남조선인민들과 민주인사들속에서 명망이 높은 선생이 구국통일전선을 형성하는데서 큰 역할을 하리라고 확신한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반미구국통일전선을 형성하는데서 중요한것은 공산주의자들과 민주인사들사이에 합작을 실현하는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과 민주인사들사이에 합작하지 못할 아무런 리유와 조건이 없습니다.》

사실 그가 지난날 상해나 중경에서 만나보았다는 공산주의자들은 대부분이 조국과 민족에 대하여서는 안중에 없고 오직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파벌싸움만 일삼으면서 민족해방운동을 말아먹은 종파분자들이며 가짜공산주의자들이였다.

하기에 공산주의자들과 민주인사들사이에 합작을 실현할데 대한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고 선생은 이번에 북에 와보고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조국과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는 참된 애국자들이라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음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조선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편협하고 독선적이기때문에 그들과는 합작하기 힘들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솔직한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물론 공산주의자들중에는 아직 세련되지 못하여 작풍상 이러저러한 결함이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몇몇 개별적인 사람들의 작풍에 국한된 문제이지 결코 전체 공산주의자들과 관련된 문제는 아니라고, 구국의 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는 선생이 몇몇 공산주의자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작풍상결함을 보고 공산주의자들과 합작을 못하겠다고 하면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남조선의 일부 공산주의자들에게 작풍상결함이 있다고 하여도 선생께서 넓은 도량을 가지고 리해할것은 리해하고 비판할것은 비판하면서 그들과 합작을 실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하리라고 생각한다고 깊은 신의와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이어 미제의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분쇄하고 민주주의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에서 단결보다 못지 않게 중요한것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것이라고 하신 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문제는 우리 민족자신이 의논하여 해결할 문제이지 결코 렬강들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며 조선민족이 자기 문제를 자체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 수치라고 하시면서 외세에 의존하여 우리의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것은 사대주의사상이며 그렇게 하여서는 언제 가도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수 없게 될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절대로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힘으로 민족의 분렬을 막고 조국을 통일하여야 하며 민주주의적통일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자주사상과 고매한 인품에 감동을 금치 못해하던 선생은 그이를 우러러 이런 말씀을 드렸다.

《장군님, 마지막으로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지난날 저는 해외로 돌아다니면서 크게 하는 일없이 상해림시정부의 법통을 지켜왔습니다. 적으나마 민족사에 흔적을 남긴 이 법통을 이제는 장군님께 바치려고 합니다.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을 받아주십시오.》

사실 림정의 인장이란 그에게 있어서나 그의 동료들에게 있어서는 보물중의 보물처럼 여겨오던 물건이였다. 그것은 상해의 프랑스조계지의 림정청사안에서나 머나먼 중경에로의 피난길에서나 그리고 귀국의 수만리길에서도 품에 안고있던 수호신이며 정부의 상징인 커다란 도장이였다. 그 인장을 위대한 수령님께 바치겠다는 그의 말은 수령님의 령도력, 친화력, 견인력에 감화된 우익민족주의두령의 인생전환의 선언을 의미하는것이였다. 그야말로 이것은 옛사람들이 《아침에 도리를 터득하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라고 한 말의 의미를 새삼 떠올려보게 하는 사변적인 일이라 할것이였다.

사실 그이의 접견을 앞둔 전날인 5월 2일 김구선생은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 차비로 김규식, 조소앙, 엄항섭, 조완구, 최동오선생들과 림정의 법통과 관련한 문제를 진지하게 의논하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통일천하하실 온 민족의 최고령도자이신 김일성장군님께 대한민국림시정부의 법통인장을 바치려고 하는데 의향들이 어떤가?》라고 제기하였다.

이에 국민회의 의장직을 맡고있는 조소앙선생은 《여직껏 우리가 림시정부의 법통고수를 주장한것은 미제와 리승만매국도당이 친미<정권>을 조작하고 그것을 대한민국림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것처럼 하려는 그 매국책동을 반대배격하자는데 그 진의가 있었던것 아닙니까. 남북련석회의에 이어 쑥섬협의회에서 우리모두는 김일성장군님의 구국통일경륜을 높이 받들고 북의 공산주의자들과 합작하여 련공통일, 련공애국의 길에 떨쳐나설것을 맹약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백범선생이 김일성장군님께 법통인장을 기꺼이 바치겠다는 제의에 찬의를 표합니다.》라고 절절하게 말하였다.

그러자 김규식, 엄항섭, 조완구, 최동오선생들이 백범의 제의와 조소앙선생의 찬의에 대하여 절대찬성한다고 화답해나섰다.

이리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단독으로 만나뵙는 이날 김구선생은 경건한 자세로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을 위대한 수령님 앞탁에 놓아드리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구선생의 뜨거운 심정과 절절한 소망 그리고 곡절많은 그의 한생을 헤아리시듯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선생이 내놓은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은 그냥 가지고 가십시오. 내가 그 인장은 받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그저 인민대중의 두터운 신임이 있으면 됩니다.》

김구선생은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풍모와 숭고한 정치적경륜에 탄복하여 련공애국에로의 인생전환의지를 더욱더 굳히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팔을 끼고 현관까지 바래우시면서 조국통일을 경축하게 될 그날까지 부디 건강하길 바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는 수령님께 인사를 드리고 차에 오르려다가 헤여지기 아쉬운듯 잠시 멈춰섰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그를 손저어 바래시였다. 김구선생은 그이의 모습이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도 차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이 감동적인 화폭은 수령님과 김구사이에 맺어진 의리의 세계를 담은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력사의 갈피에 찍혀졌다.

반미련공에로 인생궤도를 바꾼 김구선생은 금의환향이런듯 수령님의 은정깃든 고급옷감, 다섯상자의 한지, 많은 붓과 먹 그리고 위원돌로 된 특제품 벼루를 가지고 위풍당당하게 38°선을 돌파하여 서울에로 귀환하였다.

김구선생이 남북련석회의를 계기로 평양에 체류한 기간은 보름동안이였다. 그 나날은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자주사상, 통일방략과 민족대단합로선, 열렬한 애국심과 숭고한 민족애,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여 련공애국자로 환생한 참으로 뜻깊은 나날이였다. 이로써 그는 파란많은 긴 생애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애국의 새 삶의 순간을 맞이할수 있었다.

김구선생은 서울에 도착한 5월 6일 저녁 자기가 거처하고있는 경교장에 몰려온 외국기자들에게 당신들은 모를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에 평양에 가서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고 진정한 애국자가 어느분이신가를 똑똑히 알았다, 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북조선에서는 우리 조선사람들이 모든것의 주인으로 되고있다고 하면서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단선단정》음모책동을 신랄히 폭로규탄하였다.

이렇게 되자 미제와 리승만도당은 그의 마음을 휘여잡아 꺾어보려고 갖은 위협과 권모술수를 다 썼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난관에 부닥쳐 앞이 캄캄해지면 위대한 수령님께 편지를 올리여 방도와 출로를 찾기도 했다.

그러던 1949년 6월 26일이였다. 한낮때가 되여 돌연히 군복차림을 한 안두희란 놈이 경교장 2층 백범의 사무실에 나타나 그에게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말라고 떠벌였다.

이때 백범은 《네가 내게 반동하느냐? 나에게 반동하면 국가민족에 반동하는거다.》라고 추상같이 호령하였다.

안두희는 미국제권총을 뽑아들고 그에게 4발의 총탄을 쏘았다. 그는 얼굴과 목, 가슴과 배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져 잠시후 마지막숨을 거두었다.

백범을 살해한 범인은 그가 단독정부반대, 평화통일이름아래 공산당과 제휴, 남북정치협상에 의한 련립정부수립 기도, 미군철수 주장, 미국《경제원조》 반대, 북조선찬양 등 《불온선동》을 하였기에 암살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여기에서도 알수 있듯이 김구선생은 민족앞에 서약한 련공애국의 길, 통일의 길에서 자기의 최후를 마친것이다.

그가 희생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비보를 들으시자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시여 한동안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어떻게 하나 련석회의결정을 실행하겠다고 하던분이 돌아가다니, 그렇게 바라던 통일의 날도 보지 못하고 가다니?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감에 잠기시여 침통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참 가슴아픈 일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미국놈이 쏜것입니다. 김구는 우리와 언약을 하고 나가서 미국놈을 반대해서 싸웠습니다. 그는 비록 늦게나마 자기의 과거를 뉘우치고 애국의 길에 들어서서 련공을 지지한 량심적인 민족주의자입니다. 아까운분을 잃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슬픔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평양에서 열리고있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에서 고 김구선생에 대한 조의를 표시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기여 반공으로부터 련공의 길, 통일애국의 길로 방향전환을 한 백범 김구선생의 한생은 그대로 민족성원들에게 민족대단합의 화원이 어떻게 꽃펴나고 거대한 통일의 대하가 어떻게 마련되였는가를 가슴깊이 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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