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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 1』중에서 1. 3)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의 나날에 -벽초 홍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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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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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 1』중에서

 

 제    1    장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에서

3.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의 나날에

벽초  홍명희

 

온 민족의 커다란 관심속에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가 성과적으로 끝나고 남조선에서 온 일부 인사들이 평양을 떠나기 시작하던 주체37(1948)년 5월 6일이였다. 남북련석회의가 끝난지도 며칠이 지나갔건만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려는 겨레의 열망을 안고 평양은 잠 못들고있었다.

이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의 저택으로 가는 벽초 홍명희선생은 흥분으로 하여 도저히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보름전 그이를 처음으로 만나뵙던 감격이 자꾸만 가슴을 파고들었다.

남북련석회의가 시작되여 2일회의를 진행하고있던 4월 21일 홍명희선생은 아들 홍기무와 함께 모란봉극장 휴계실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련석회의에 참가할데 대한 초청장을 받고 뒤늦게 도착한 홍명희선생은 생전에 수령님을 꼭 한번 뵙자던 평생의 소원이 이제야 풀린다는 감격과 흥분으로 높뛰는 가슴을 다잡을수 없었다.

잠시후 휴계실문이 소리없이 열리더니 만면에 밝은 미소를 담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활기에 넘친 걸음걸이로 방안에 들어서시였다.

끝모를 환희와 격정에 휩싸인 그는 흰 두루마기자락을 날리며 수령님께로 급히 다가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으시고는 반갑습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의자앞으로 천천히 이끌어주시였다.

밝은 해빛이 비쳐드는 방안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마주앉은 후에야 선생은 비로소 장군님, 나라의 해방을 위하여 일제와 싸우시기에 고생인들 얼마나 많으셨습니까라고 인사의 말씀을 올리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고생이야 국내에 계신 여러분들이 더 하셨습니다.》라고 겸허하게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그럴리 있습니까? … 그 기나긴 성상을 이국산야에서 싸우신 장군님이시야말로…》

선생은 목이 메여 한동안 뒤를 잇지 못하다가 이렇게 장군님을 뵈오니 한생에 쌓였던 시름이 다 놓이고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고 말씀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격을 금치 못해하는 그의 손을 잡으신채 나직한 어조로 그동안 서울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어 수령님께서는 그의 건강과 서울에 두고 온 집안형편에 대해 알아보시고나서 미제의 침략정책으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 조국앞에는 민족분렬의 엄중한 위기가 닥쳐왔다고 하시면서 금번 련석회의를 가지게 된 취지에 대하여 설명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민족분렬책동을 막고 통일적중앙정부를 세울데 대한 애국애족의 방침을 밝히시면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당파와 소속,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가리지 말고 모두다 단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 마디마디에는 한지맥, 한피줄을 이은 나라와 민족의 절반이 외세에 짓밟히우는 참상을 가셔내시려는 뜨거운 애국심이 넘쳐흐르고있었다.

련석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주석단에 앉혀주시고 회의연단에서 연설하도록 해주시였으며 북반부의 여러곳도 돌아볼수 있게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도 이날 또다시 홍명희선생을 저택에서 만나주시는것이였다. 홍명희선생이 그이의 저택에 도착하자 이미전부터 저택정문앞에서 기다리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반겨맞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큰절을 드리려는 그를 만류하시고 두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북련석회의석상에서 선생을 처음으로 만났던 때로부터 벌써 10여일이 지나갔습니다. 며칠전부터 선생을 한번 찾아뵙자고 생각하였는데 바쁜 일로 하여 시간을 내지 못하고있다가 오늘에야 겨우 기회를 얻었습니다.》

순간 그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손길에 이끌려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에 들어선 그는 아담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수수하고 소박한데 대해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미 여러번 들어온바였지만 이렇게까지 검박하게 생활하시는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는 그이의 인민적풍모앞에 머리가 숙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에게 자리를 권하신 수령님께서는 그동안 선생께서 년로한 몸으로 여러곳을 돌아보셨는데 불편한 점은 없었는가고 다정히 물어주시며 건강에 각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그와 담화하시는 동안 이미 준비하여놓은 음식을 차리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잘 차리지는 못하였지만 성의로 알고 많이 들라고 하시며 선생의 손에 수저를 들려주시였다.

손수 그의 잔에 술을 부어주신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선생께서는 일제의 학정밑에서도 민족적량심과 지조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지켜냈다고, 우리는 산에서 일제와 싸울 때부터 국내에서 선생처럼 민족적량심과 지조를 지켜 일제에게 굴복하지 않고 싸워온분들에 대하여 깊은 존경심을 품고있다고, 왜정세월에 민족적량심과 지조를 지켜낸다는것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산에서 일제와 직접 싸워온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하는것을 잘 알고있다고 하시였다.

자기의 지난날을 민족적량심과 지조를 지켜싸운 투쟁으로 높이 평가해주시는 그이앞에서 선생은 너무도 황송하여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굽만 축축히 적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에도 선생은 미국사람들의 회유와 기만책동을 물리치고 애국적인 활동을 하여왔다고, 선생께서 허헌선생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과 함께 우리를 환영하기 위한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위원장으로서 활약하였다는것을 인편을 통하여 들었다고, 나라에 조성된 정세로 하여 비록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였지만 우리는 여러분의 애국적소행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으며 고무적인 힘을 얻었다고 하시면서 그의 애국적활동을 또다시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해방전은 물론이고 온갖 주의주장이 활개치던 해방직후의 그 복잡한 정국의 소용돌이속에서 그가 자기의 지조를 굽히지 않을수 있었던것은 그의 마음속에 우리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믿음과 흠모심이 간직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그 마음이 기둥이 되여 그는 야만적인 일제통치하에서도 변함이 없었으며 해방직후 미군정에서 충청북도 지사로 임명한다는 임명장을 보내왔을 때에도 단마디로 거절했고 당시 남조선에서 박헌영이 그 무슨 《인민공화국》을 건설하자고 회유할 때에도 그를 단호히 뿌리치고 허헌, 려운형을 비롯한 각계층 인사들과 함께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위원장으로 활약할수 있었던것이다. 백의동포의 한사람이라면 응당 했어야 할 그런 일을 이렇게까지 값높게 평가해주시니 그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감사의 정으로 들먹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그에게 북조선의 여러곳을 돌아본 인상에 대해 물으시였다.

《장군님, 전 북조선에 들어온 며칠동안에 정말 꿈과 같은 현실을 목격하였습니다. … 제가 남조선에 있을 때 북조선이 많이 발전하였으리라고 생각은 하였지만 이렇게까지 발전한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북조선의 현실과 그 요인에 대하여, 앞으로 착취와 압박이 없고 전체 인민이 유족하고 문명하게 살게 될 새 사회를 건설하시려는 자신의 원대한 구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는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금시 보는것만 같았다. 동시에 내 나라의 절반땅, 또다시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화한 남조선의 현실이 떠올라 가슴을 아프게 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심중을 읽으신듯 북남조선의 현실을 두고 생각되는것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홍명희선생은 북조선은 흥왕하는 집같고 남조선은 망하는 집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말씀올리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 남북조선의 판이한 현실을 대비하였다고 긍정해주시면서 지금 남조선에서는 백주에 테로와 학살이 횡행하고 악행이 자행되며 인민들은 해방된 민족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기아와 빈궁속에서 허덕이고있다고, 남조선인민들의 불행한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는 조선인민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감시하에 남조선에서 단선을 기어이 조작하려고 광분하고있다고, 그로 하여 우리 민족은 분렬될 위험에 처하여있다고 하시면서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절대로 이것을 수수방관할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한강토우에서 살아온 단일민족입니다. 유구한 세월 단일민족으로서의 순결성을 지켜온 우리 민족이 어찌 오늘에 와서 분렬될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민족분렬의 엄혹한 형세를 관망만 하고 바로잡지 않는다면 후대들에게 엄중한 죄를 짓는것으로 될것입니다.》

마디마디 애국의 피가 끓어넘치게 하는 말씀이였다. 그는 자기앞에 앉아계시는 30대의 젊으신 청년장군앞에서 지나온 인생길을 더듬어보게 되였고 어쩐지 죄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나라를 찾을 방도를 찾겠다고 이국땅에서 교편을 잡고 계몽운동도 해보고 3. 1인민봉기의 대렬에서 만세도 불러보았으며 시대의 흐름을 타고 흘러든 공산주의사상조류에도 관심을 돌렸는가 하면 공산주의운동가들과 민족주의자들의 련합을 실현하여 나라찾을 방략을 마련하고저 신간회의 창설을 주관하기도 하였던 그였다. 그리고 신문사에서 인민들의 애국열의를 불러일으키는 기사들도 쓰고 소설창작을 통해 조선동포들의 마음속에 민족의 넋을 심어주려고 오래전부터 인민들속에 전해져내려온 황해도지방의 의적 림꺽정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도 써보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갈길 몰라 헤매는 우국지사의 한갖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해방직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직접 파견하신 한 일군으로부터 정당활동을 벌릴데 대한 그이의 가르치심을 전해듣고서야 그는 아들 홍기무와 함께 중간세력을 망라하는 민주독립당을 창설하고 그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통일적인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민족대단결대오에 들어설수 있었던것이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에 조성된 긴박한 정세하에서 우리는 《단선단정》조작책동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기 위하여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의 련석회의를 개최할것을 제의하였다고, 이 제의에 대하여 애국적민주인사들은 물론 얼마전만 하여도 미국에 환상을 가지고있던 일부 사람들까지도 열렬히 지지하였고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이 우리의 제의에 호응하여 사선을 넘어 평양으로 달려왔다고, 그리하여 평양에서는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가 진행되였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남북조선의 정당, 사회단체들은 사상과 정견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련석회의정신과 민족통일의 리념에 기초하여 더욱 굳게 단결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단결만이 민족재생의 유일한 길입니다. 남북조선의 애국적인 정당, 사회단체들과 전체 인민들이 굳게 단결하여 투쟁한다면 능히 미제의 반동적인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분쇄하고 민주주의원칙에서 통일정부를 수립할수 있습니다.》

단결, 단결만이 민족통일을 안아오는 길이라는 신념이 선생의 가슴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순간이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요즘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였던 남조선대표들이 돌아가고있는데 오래지 않은 기간이지만 한자리에 모여앉아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하여 론의하고 같이 손잡고 싸울것을 결의다진분들과 헤여지자니 섭섭한감을 금할수 없다고, 물론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투쟁하는 길에서는 만났다가 헤여질수도 있고 헤여졌다가 다시 만날수도 있지만 미제와 반동들이 활개치는 남조선으로 대표들이 돌아가는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가슴아프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선생께서는 금후 어떻게 하실 의향입니까?》라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이의 친근한 물음에 홍명희선생은 오늘 이렇게 장군님을 뵈옵고 천금같은 가르치심까지 받아안으니 암흑세계에서 헤매이다가 광명을 만난것 같다고, 장군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여기 남아서 장군님을 받들어 남은 여생이나마 힘껏 일하고싶다고 말씀드렸다.

이것은 그의 진심이였다. 마치도 그이의 손길을 놓치면 당장에 자기의 목숨이 끊어질것만 같았고 그 품을 떠나서는 자기의 생이 무의미한것으로 될것 같은것이 그의 심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진심의 토로를 들으시고 잘 생각하였다고 못내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김구나 김규식 같은분들은 여기에 남아있고싶어도 적들이 악선전을 할가봐 부득이 남조선으로 돌아갔지만 선생의 경우는 그분들의 경우와 다릅니다. 미제와 그 주구들은 오래전부터 선생을 좋지 않게 보고 주목하고있는데 선생이 여기에 왔다간것을 알게 되면 그들이 가만있지 않을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선생이 남조선에 나가면 정치활동을 자유로이 할수 없을뿐아니라 신변이 위태로울수 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여기에 계셔도 할 일이 많다고 하시면서 《여기서 우리와 함께 손잡고 일합시다.》라고 시원스럽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후대교육사업과 민족간부양성사업, 민족문화유산의 계승발전과 조선어의 발전문제 등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새 조선의 민족문화를 건설하는 사업도 응당 선생과 같은분들이 맡아주어야 한다는 기대를 표명하시였다. 그리고 그가 남조선의 애국적민주력량을 묶어세우며 남조선인민들을 각성시키는 사업도 맡아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는 자기를 새 조국건설의 일익에 세워주시려는 하늘같은 믿음이 안겨와 흥분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기가 그렇듯 중대한 일을 맡아 제대로 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앞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의 이러한 심중을 헤아리신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물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높은 애국정신과 견결한 투지만 가지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해낼수 있다고, 선생이 능력껏 일할수 있도록 백방으로 도와드리겠다고 고무의 말씀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따뜻한 바래움을 받으며 숙소로 향하는 선생의 눈에서는 두줄기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렸다.

파란많던 인생길에서 눈물을 몰랐던 홍명희선생이 그날에 흘린 눈물은 정녕 이 세상에서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찾고 행복을 맛본 사람만이 흘릴수 있는 뜨거운 눈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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