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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6) 중에서 1. 3) 친어버이의 따뜻한 손길로 -새집들이한 농장마을을 찾으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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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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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6) 중에서

 

1. 선군조선의 존엄과 기상을 더 높이 떨치시려

3)  친어버이의 따뜻한 손길로

새집들이한 농장마을을 찾으시여

 

주체95(2006)년 1월말, 새 세기에 들어와 처음으로 평양에서 전국농업대회가 진행되였다.

대회에서는 열띤 토론들이 있었는데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위대한 장군님의 의도대로 알곡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하며 전반적인 농업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일 불타는 결의들을 다지였다.

그리고 전체 농업근로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위대한 장군님께 드리는 맹세문을 채택하였다.

전체 대회참가자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높이 받들어 경제건설의 주공전선을 담당한 농업근로자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함으로써 농업생산에서 일대 비약을 이룩할 드높은 열의에 넘쳐있었다.

대회참가자들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각별한 믿음과 사랑은 그들모두의 심장마다에서 애국의 더운 피가 더욱 끓게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회참가자들의 참관일정과 예술공연관람문제, 숙식조건과 렬차수송, 뻐스리용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보살펴주시였으며 대회참가자모두에게 사랑의 선물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두터운 신임과 은정에 고무된 농업대회참가자들을 비롯한 전국의 농업근로자들은 그이께 다진 맹세대로 농업생산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나갈 일념을 안고 알곡증산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다시한번 농사에 총동원, 총집중할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호소를 받들고 나라의 방방곡곡 전야마다에서는 온 한해 알곡증산을 위한 영농전투의 불길이 꺼질줄 모르고 세차게 타번지였다.

농업근로자들이 포전마다에 뿌려가는 애국의 구슬땀은 그대로 훌륭한 결실을 안아왔는데 그해 대홍단군에서는 보기 드문 감자소출을 냈는가 하면 평안북도와 황해남북도의 여러 농장들에서는 지원로력을 받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농사를 알심있게 지어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국의 농업근로자들이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주인의 본분을 다해갈수록 그들을 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은 더욱 깊어만졌다.

농민들의 심정을 구석구석 그 누구보다 깊이 헤아리시며 그들에게 더 좋은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려 마음쓰신 위대한 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이 낳은 하많은 이야기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주체95(2006)년 11월 중순 어느날, 함경남도안의 여러 부문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함주군에서 건설한 농민휴양소를 돌아보시였다.

휴양소에 들어서시여 전경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의 식을 본따 휴양각의 지붕을 뾰족하게 시공한 부족점을 지적하시고나서 농민휴양소 3호각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2층으로 되여있는 휴양각들에는 한층에 2개 호실씩 배치되여있었다.

복도 오른쪽 1호실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이불과 침대를 비롯한 가구와 비품들, 방들의 전기난방화상태에 대해 료해하시다가 문득 창문밖으로 시선을 보내시였다.

창문으로는 마당에 꾸려놓은 배구장이 환하게 내다보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맑은 유리를 넣으니 방안의 사람들이 옷을 벗고있는것이 밖에서 다 보이겠다고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제딴에는 휴양소를 특색있게 꾸린다고 하면서 품을 들이느라 하였지만 실지 여기서 생활할 휴양생들의 견지에서 깐깐하게 일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다정한 음성으로 창문에 맑은 유리보다도 곰보유리나 흐린유리, 브론즈유리 같은것을 넣으면 들여다보이지 않아서 좋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음으로 들리신 곳은 오락장이였다.

탁구장을 거쳐 윷놀이장으로 들어서시며 장군님께서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시는것이였다.

원래 당구판이였던것을 개조해 설치한 윷놀이판이 눈에 띄였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것을 모르실리 없었다.

사실인즉 오락장을 꾸릴 때 이왕 품을 들이던바에 당구장까지 꾸려놓으면 일정하게 품위가 있어보일것 같은 생각에 탁구장과 함께 당구장을 꾸려놓았었다. 그후 인민들속에서 윷놀이와 장기를 비롯한 민속놀이를 장려할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고 윷놀이장으로 고쳐 바로잡았던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웃음섞인 어조로 농민들속에 당구칠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고 물으시고나서 말씀하시였다.

《농민휴양생들은 당구를 치게 하기보다는 윷놀이나 꼬니 같은것을 많이 하게 하는것이 좋습니다.》

그러시고는 윷놀이 같은것은 한번에 한 20명씩 빙 둘러서서 와와 하면서 하는데 참 재미있다고, 윷놀이, 장기, 꼬니 같은 민속놀이를 많이 하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놀이방법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시였다.

한 일군이 장군님께 장기판과 꼬니판들을 밖에 만들어 놓았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으시고 물론 밖에 만들어놓는것도 좋지만 비가 오는 날에 할수 있게 실내에 만들어놓는것도 좋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또다시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휴양기간에는 비가 오는 날도 있을수 있고 또 말그대로 농민들을 위한 휴양소인것만큼 농번기가 아닌 겨울철에 주로 운영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휴양생활에 대해 깊은 생각이 없이 밖에다 장기판과 꼬니판을 꾸려놓고 멋이나 부렸으니 큰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휴양소 식당안을 돌아보실 때에도 벽면에 걸려있는 상식판 하나에도 깊은 주의를 돌리시며 콩나물 기르는 방법이나 김치 담그는 방법 같은것도 소개하여 사람들이 휴양하러 왔다가 한가지 상식이라도 정확히 배워가게 하도록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그날 휴양소의 구석구석 자그마한것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리용할 농민들의 편리부터 먼저 생각하시며 마음쓰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의 생각은 깊어만 갔다.

사실 휴양소가 완공된 후 농민휴양생들은 휴양소생활에 대단한 만족을 느끼면서 너나없이 기뻐하였다. 그래서 휴양생들이 생활에서 불편해하는것이 없는가에 대해서는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들이였던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사자인 농민들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사소한 생활상불편에 이르기까지 헤아려주시니 그끝도 깊이도 알수 없는 그이의 무한한 사랑의 세계를 언제 가면 다 알수 있겠는가.

누구도 따를수 없는 그이의 열렬한 인민사랑이야말로 자신들이 본받고 구현해나가야 할 귀감임을 뜨겁게 새겨안으며 일군들은 인민의 참된 복무자로 일해나갈 결심을 다시금 새로이 다지였다.

경제강국건설의 주공전선의 담당자들인 농업근로자들을 아끼고 위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의 이야기는 황해북도 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에서도 전설같이 꽃피여났다.

2006년 5월 미곡협동농장은 흥겨운 노래소리, 웃음소리로 들썩하였다. 한날한시에 미곡리사람들이 새로 지은 수백동의 살림집들로 이사를 가는 큰 경사가 났던것이다.

온 마을이 들썩하게 농악소리 높이 울리며 새집들이 하는 흥겨움에 한껏 벅차오른 미곡리사람들의 가슴가슴은 마을에 위대한장군님을 모시고싶은 간절한 소원으로 설레였다.

드디여 그 소원이 풀리는 날이 왔다.

2006년 12월초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집들이를 한 마을을 돌아보시기 위해 미곡협동농장을 찾아주시였던것이다.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차에서 내리시는 장군님의 색바랜 야전복에는 초겨울의 찬 기운이 그대로 스며있었다.

일요일의 휴식도 잊으시고 자기들의 농장을 찾아주신 그이를 뵙는 순간 농장일군들은 눈굽이 젖어와 감사의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였다.

먼저 이 농장에 세워진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비에 대한 해설을 들으시고나서 혁명사적관을 돌아보신 위대한장군님께서는 한참동안 마을전경을 바라보시다가 미곡협동농장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살림집을 새로 많이 지었다고 하시며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마을에 건설한 새 집은 세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하나는 2층으로 된 다락식살림집이였고 다음은 은정리식살림집이라고 부르는 3칸짜리 조선식살림집이였다. 그리고 다른 한 형태로서는 방앞에 널직하게 외랑을 만들어 거기서 식사도 하고 유희오락도 할수 있게 설계한 살림집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락식으로 건설한 한 농장원의 살림집부터 들리시였다.

오늘이면 오실가 래일이면 오실가 기다리고기다리던 위대한 장군님을 뜻밖에도 자기 집에 모시게 된 기쁨으로 하여 이 집 부부와 아이들은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들이 올리는 인사를 받으시며 살림집에 들어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집주인이 제대군관이라는것을 아시고 몹시 반가와하시며 언제 결혼했는가, 군사복무는 어디서했는가,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가 일일이 물으시고나서 그가 군사복무를 할 때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까지 보아주시였다.

새집들이한 자식의 집에 찾아오신듯 허물없이 살림방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시였다.

《이 살림집의 결함이 무엇이요?》

자기가 살고있는 살림집을 더없이 만족하게만 생각하고있던 집주인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장군님, 집이 정말 좋습니다. 살림방이 4칸이고 2중벽으로 되여있어 겨울에 외풍이 없고 춥지 않습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살림집을 옛날 지주집 부럽지 않게 잘 지었습니다.》라고 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방안에 놓여있는 TV수상기를 보시고는 전기가 잘 오는가도 물으시고 부엌에 가시여서는 알른알른 윤기도는 부엌세간들이 그쯘하게 정돈되여있는 정갈한 모습에서 이 집 주부의 알뜰한 일솜씨도 가늠하시며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밖에 나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살림집 여기저기를 살펴보시다가 금년도 장마철에 비는 새지 않았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집주인이 비가 한방울도 새지 않았다고 대답올리자 장군님께서는 비가 새는지 안 새는지는 래년 장마까지 겪어보아야 알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친어버이의 심정그대로 자기들의 살림살이를 위해주시는 장군님앞에 이 집 부부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고야말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뜨락을 나서시려 하자 집주인은 그이앞으로 나서며 《장군님장군님께서 우리 집을 찾아주시였는데 장군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고싶은것이 저희들의 최대의 소원입니다.》라고 어려움도 잊고 간절히 청을 드리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우리모두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아담한 문화주택을 배경으로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그의 집을 나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살림집옆에 꾸려놓은 민속놀이장도 돌아보시고 미곡협동농장에서 쉬는 날에 윷놀이도 하고 장기와 꼬니도 둘수 있게 민속놀이장을 잘 꾸려놓은데 대하여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음으로 들리신 곳은 은정리식 살림집이였다.

감격에 겨워 정중히 올리는 집주인들의 인사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집구경을 하러 왔다고 허물없이 말씀하시면서 아래방과 웃방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돌아보시였다.

TV를 정상적으로 보는가 알아도 보시고 부엌에 가시여서는 메탄가스콘로의 불길도 가늠하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친부모의 정에도 비길수 없는 다심한 사랑으로 살림살이형편을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이어 집밖으로 나오시여 수십마리의 살찐 토끼들이 꽉 들어찬 큼직하면서도 아담한 토끼우리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문밖을 나서시다가 문득 담벽에 걸어놓은 문패에서 시선을 멈추시였다.

거기에는 집주인의 이름이 멋들어지게 씌여있었다.

그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집을 쓰고산다는 이 마을사람들의 자랑과 긍지가 한껏 어린 문패였다.

한동안 생각깊은 시선으로 문패를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지금은 문패에 집주인의 이름만 써놓았는데 이렇게 하면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는 만날 사람을 찾기 곤난할것이라고 혼자말씀처럼 외우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일군들에게 문패만 보고도 집주소까지 정확히 알수 있게 되여야 하겠는데 지금은 그렇게 되여있지 못한데 대해 말씀하시고나서 사람들이 편지를 보낼 때 봉투에 받을 사람주소를 정확히 써야 그 편지가 제대로 갈수 있는것처럼 문패도 잘 만들어 달아야 사람들이 자기가 찾는 집을 정확히 찾아갈수 있다고, 앞으로는 문패에 몇인민반 누구라고 써넣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자그마한 문패에도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시는 장군님의 세심한 사랑앞에서 집주인도 동행하던 일군들도 무한히 감복되였다.

농민들을 현대적인 살림집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게 해주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손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문패와 관련한 사랑넘친 말씀을 주시고 밖으로 나오시여 규모있게 늘어선 살림집들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살림집옆으로 낸 차길을 가리키시며 여기서는 차길을 잘 뽑았다고, 이렇게 살림집과 살림집사이에 차길을 내니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는것이였다.

일군들모두가 살림집을 지으면서 2동건너마다에 낸 평범한 차길을 보고 장군님께서 왜 그리도 기뻐하시는지 영문을 알수 없어 의아해하였다.

그러는 그들에게 장군님께서는 자식들을 세간 내보낼 때 자동차나 뜨락또르에 이사짐을 싣고 나를 경우까지 헤아리시며 농촌살림집을 지으면서 집들사이에 차길을 내는것이 중요하다고, 앞으로 농촌들에서 살림집을 한두채 짓지 못하고 부침땅이 좀더 들더라도 살림집들사이에 차길을 내주도록 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일군들모두가 불시에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도로를 낸 당사자들도 그저 살림집들사이에 도로를 내면 주변이 훤히 트이고 집들이 규모있게 보일수 있다는 건축학적요구를 담아 그렇게 시공한것이지 농민들의 생활상편의를 보장하여주는 문제로까지는 생각도 못했던것이였다.

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문제를 농민들의 생활상편의를 보장해주는가 못해주는가 하는 관점문제로, 인민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로 보신것이였다.

모든것을 인민들의 생활에 최대로 편리하게! 이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있은 인민사랑의 뜻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형식의 살림집까지 다 보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떠나시기에 앞서 천지개벽한 미곡리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곳에 가시여 끝간데 없이 펼쳐진 미곡벌과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살림집지구를 다시금 부감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미곡협동농장 혁명사적관과 살림집을 돌아보니 대단히 만족하다고, 정말 일을 많이 하였다고 하시면서 믿음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앞으로 미곡협동농장이 농사도 잘하고 살림집을 꾸리는데서도 전국의 앞장에 서기 바랍니다.》

한겨울에 오시여 미곡리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남기신 위대한 장군님의 봄빛같이 따사로운 사랑, 친어버이의 다심한 정은 그대로 이곳 농민들만이 아닌 온 나라 전체 농업근로자들을 알곡증산투쟁에로 고무추동하는 거대한 힘의 원천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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