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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정일애국주의에 대한 이야기』중에서 3. 4) 대고조전역에 새겨진 애국헌신의 자욱 -승리의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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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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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정일애국주의에 대한 이야기』중에서

 

3. 부강조국건설의 만년토대를 마련한 김정일애국주의

대고조전역에 새겨진 애국헌신의 자욱

승리의 불길

 

조용히 불러만 보아도 눈굽이 적셔지는 2011년, 이해는 조국청사에 분분초초 애국의 자욱을 찍어가신 절세의 애국자의 위대한 헌신의 한해였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습니다.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조선혁명을 책임진 주인이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품으신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사회주의조국을 수호하고 빛내이시였으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과 인민을 위한 애국헌신의 길을 이어가시였습니다.》

2011년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한평생 간직하고 구현해오신 숭고한 애국주의, 김정일애국주의가 어떤것인가를 가장 뚜렷이 보여준 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온 나라에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이 거세차게 타오르고 날에 날마다 대혁신, 대비약의 기상이 차넘치는 속에 밝아온 주체100(2011)년, 격동하는 21세기의 첫 10년을 위대한 승리의 년대로 빛내이고 새로운 희망의 해 2011년을 맞이한 공화국의 군대와 인민은 이해에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따라 사회주의강성국가의 대문을 활짝 열어제낄 크나큰 포부와 필승의 신심에 넘쳐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쉬는 2011년의 첫날이건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명절휴식도 없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이해의 과업과 관련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먼저 경공업은 강성국가건설을 위한 이해의 총공격전에서 주공전선이라고 하시면서 경공업에 모든 힘을 집중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강조하시였습니다.

경공업에 힘을 집중하여 인민생활을 높이는것은 현시기 우리 혁명의 절박하고도 성숙된 요구로 제기되고있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신 장군님께서는 나는 지난해 중앙과 지방의 경공업공장들과 인민생활향상과 련관되여있는 공장, 기업소들과 봉사기지들을 60여개 단위나 현지지도하는 과정에 경공업부문의 전반적실태를 깊이 료해하였으며 경공업에 힘을 집중하여 인민생활을 높일수 있는 방도들도 찾았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나는 올해를 경공업의 해로, 경공업을 올해 총공격전의 주공전선으로 정하였다고, 인민생활향상을 최대의 중대사로, 최고의 투쟁목표로 틀어쥐고 끝장을 볼 때까지 밀고나가려는것은 나의 확고한 립장이고 결심이라고, 올해 경공업부문에서는 인민소비품생산을 부쩍 늘이고 그 질을 결정적으로 높여 올해를 경공업이 용을 쓰는 해, 인민들이 우리 경공업의 덕을 보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과업들을 제시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하신 이날의 가르치심은 온 나라 전체 인민에게 이해의 투쟁목표와 과업을 밝혀준 강령적지침인 동시에 자신께서 받아안으신 전투목표였고 과업이였습니다.

이렇게 이해의 첫날 아침에 경공업을 총공격전의 주타격방향으로 제시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월 12일 대안친선유리공장 남포유리그릇분공장을 찾으시는것으로부터 인민경제부문에 대한 2011년 현지지도강행군을 시작하시였습니다.

이 공장은 1971년 7월 16일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 따라 건설되여 백규석과 장석, 규사를 비롯한 우리 나라에 풍부한 원료를 가지고 각이한 용도의 유리병들을 생산하는 공장으로서 이해에 창립 40돐을 눈앞에 두고있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경제부문에 대한 새해의 첫 현지지도로 유리병생산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자기들의 일터를 찾아주실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공장의 일군들은 그이께 《위대한 장군님, 새해에 건강하십시오.》라고 새해인사를 정중히 올리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고맙다고 하시며 새해공동사설을 높이 받들고 정초부터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고있는 공장의 로동계급을 고무해주자고 찾아왔다고 따뜻이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한해에 수천만개의 여러가지 유리병을 생산할수 있는 현대적인 유리병생산공정을 꾸렸는데 그동안 일을 많이 하였다고 치하해주시였습니다.

이 공장에 현대적인 유리병생산공정이 꾸려지게 된데는 인민을 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로 건설된 대동강맥주공장을 찾으시였을 때였습니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무더운 한여름철에 집에 가서 랭동기를 척 열고 시원한 병맥주를 마셔본 일이 있는가고, 그때 기분이 어떠했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

이루 말할수 없이 좋았다는 일군들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병맥주생산을 늘여 세대들에 골고루 공급하게 하여야지 지금처럼 맥주집에 가야만 마실수 있게 하여서는 안된다고, 세대들에 병맥주를 공급해주어 아무때나 마시고싶은 때 마실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일군들에게 병맥주를 많이 생산하자면 유리병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금 제일 걸린것이 유리병이라고, 이제는 현대적인 맥주공장을 건설해놓은것만큼 첫째도 둘째도 유리병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습니다.

완공된 대안친선유리공장을 돌아보실 때에도 장군님께서는 줄줄이 흘러나오는 판유리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시며 대안친선유리공장이 조업하여 판유리문제가 풀린것만큼 이제는 유리병생산공정을 더 갖추어놓아야 하겠다고 하시며 실질적인 대책까지 하나하나 세워주시였습니다.

장군님의 이렇듯 크나큰 관심과 심혈속에 현대적인 유리병생산공정이 새로 꾸려지고 거기에서는 각종 유리병들이 흘러나오게 되였던것입니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장의 연혁소개실로부터 제품진렬실, 원료진렬실, 포장조종실, 실내적재장 등을 모두 돌아보시고 오늘 남포유리그릇분공장을 돌아보니 대단히 만족하다고, 이 공장에 와서 유리병이 꽝꽝 생산되여나오는것을 보니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공장을 우리 로동계급이 자체의 힘과 기술로 일떠세운것이 마음에 든다시며 기쁨을 금치 못하시였습니다.

기쁨과 만족속에 공장을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유리병생산을 더욱 늘이기 위하여 공장앞에 나서는 과업을 명백히 밝혀주시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도 취해주시였습니다.

년중 제일 추운 때에 불편하신 몸으로 자기들의 공장을 찾으시고 오랜 시간 돌아보시면서 높은 평가와 크나큰 고무를 안겨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공장의 일군들은 감격을 금치 못해하였습니다.

이렇게 인민을 위한 뜨거운 사랑의 자욱을 남기시며 인민경제부문에 대한 이해의 첫 현지지도를 시작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월 19일에는 국가과학원 생물공학분원과 대성산기슭의 중앙동물원을 그리고 1월 20일에는 대한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건설한 룡악산샘물공장을 돌아보시였으며 그 다음날인 1월 21일에는 사리원시의 정방산종합식료공장과 사리원기초식품공장, 사리원정방식료생산협동조합을 련이어 찾으시였습니다. 그리고 1월 22일에는 만수대창작사를, 1월 30일에는 2. 8비날론련합기업소와 룡성기계련합기업소, 흥남비료련합기업소를 찾으시며 장군님께서는 2011년의 1월의 나날들을 현지지도강행군으로 이어가시였습니다.

이해의 1월은 류달리 추웠습니다. 60년이래 처음으로 닥쳐온 강추위가 강산을 얼구었습니다.

보통사람들도 몸을 움츠리며 나다니기 저어하던 1월의 그 맵짠 강추위속에서 련일 인민경제 여러 부문을 현지지도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신문과 TV화면으로 뵈오며 온 나라 인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습니다.

장군님도 인간이시였습니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으로 육체적피로를 풀수 있는 권리가 장군님께도 있었습니다.

한 철학자는 《잠은 인간에게 있어서 마치 시계의 태엽을 감는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잠을 자야 피로를 풀고 원기를 회복할수 있는것만큼 잠은 시계에 있어서의 태엽과 같다고도 말할수 있다는것입니다. 하기에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잠과 휴식의 권리를 향유하며 이에 대하여 누구도 탓하지 않습니다.

맑스주의창시자의 한사람이며 국제로동계급의 수령이였던 엥겔스가 서거한 다음 그의 유언대로 시회(화장한 시체의 재)를 망망대해에 가라앉힌 곳은 다름아닌 엥겔스가 생전에 그렇게도 좋아하던 여름휴양지인 이스트번해안가였습니다.

오늘의 세계에서 주말휴식, 월말휴식을 누리지 않는 국가수반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차례지는 휴식의 권리를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은 도저히 누리지 못하시였으며 오히려 그렇게 하는것을 인생의 락으로 받아들이시며 불철주야의 강행군길을 이어가시였습니다.

언제인가 장군님께서는 다문 얼마만이라도 휴식하실것을 간청하는 일군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였습니다.

나도 인간인것만큼 힘이 들고 잠이 그리울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는 내 조국, 우리 조선을 세계에 빛내이며 떨칠 굳은 맹세를 다지고 혁명의 길에 나선 수령님의 전사이므로 편안히 휴식할수도 없고 마음놓고 잠을 잘수도 없는 몸이다. 이제 우리 조선을 세계의 상상봉우에 우뚝 올려세우고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게 되면 그때 가서 인민들의 소원대로 마음놓고 휴식도 하고 밀렸던 잠도 실컷 자보려고 한다. …

이렇듯 열렬하고도 숭고한 애국의 일념을 안으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월뿐만아니라 2011년 열두달을 애국헌신의 현지지도강행군으로 수놓으시였습니다.

평양시와 함경남북도, 자강도와 량강도, 강원도와 평안남북도, 황해북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공장, 기업소, 인민봉사기지들을 찾고 또 찾으시며 장군님께서 이어가신 헌신의 초강도강행군길은 온 나라에 인민생활향상의 거세찬 불길을 지펴올렸습니다.

특히 이해에 들어와 여러차례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를 받은 함경남도의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는 대혁신, 대비약의 열풍이 세차게 몰아쳤습니다. 마그네샤크링카공업의 주체화를 실현한 대흥청년영웅광산과 룡양광산, 단천마그네샤공장, 현대적으로 개건된 단천제련소와 단천광산기계공장, 16년만에 비날론생산을 다시 시작한 기세로 능력확장공사를 다그쳐 종합적인 대화학공업기지로 더욱 훌륭히 변모된 2. 8비날론련합기업소, 우리 식의 지열설비를 비롯하여 그 어떤 최신식대형기계설비도 마음먹은대로 꽝꽝 만들어내고있는 룡성기계련합기업소, 가스화1계렬공사를 완공하고 드디여 주체비료를 생산하는데 성공한 흥남비료련합기업소, 과수의 새시대가 펼쳐진 룡전, 덕성과수농장, 서해안의 농장들과 어깨를 겨루는 함주군 동봉협동농장, 광포오리공장을 비롯하여 함경남도에서는 련일 눈부신 성과들이 이룩되였습니다.

1월과 3월에 이어 또다시 10월 함경남도의 단천지구와 흥남지구의 여러 광산,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도안의 중요공장, 기업소일군들과 로동계급이 인민경제계획수행에서 돌파구를 열어제끼고 나라의 경제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한 투쟁에서 이룩한 성과를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함남땅에서 타오른 창조와 변혁의 불길이 온 나라에 타번지게 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함남의 불길은 위대한 장군님의 구상을 끝까지 실현해나가려는 투철한 신념, 제힘으로 세계에 솟구쳐오르려는 자력갱생의 정신의 분출이며 자기 고장, 자기 일터에서 강성국가의 대문을 남먼저 열어제끼려는 선구자적기질의 발현입니다. 함남의 불길에는 장군님의 사상과 의도를 가장 충직하게 받들어온 인민들의 고결한 진정이 깃들어있고 최후승리의 령마루에로 과감히 전진하는 선군조선의 억센 기상이 맥박치고있었습니다. 대혁신, 대비약으로 약동하는 대고조시대를 상징하고 추동하는 사상정신적표대라는데 함남의 불길이 차지하는 특출한 지위가 있었습니다.

강선의 봉화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대고조진군은 희천속도의 창조에 이어 함남의 불길로 더욱더 높은 단계에로 심화되였던것입니다.

한해가 다 저물어가던 12월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함경남도를 또다시 찾으시고 도안의 여러 단위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함남의 불길이 온 나라에 더욱 세차게 타번지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습니다.

12월의 찬바람이 몰아치던 그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얼마나 막중한 정신육체적과로를 초인간적인 의지의 힘으로 이겨내시며 현지지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시였는가를 말해주는 가슴뜨거운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례년에 없이 많은 눈이 내리던 2011년 12월 11일 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함경남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떠나시기에 앞서 도의 한 책임일군을 야전렬차로 부르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격정에 젖어있는 그 일군에게 이번에 또다시 함경남도에 와서 여러 공장, 기업소들과 협동농장을 돌아보았는데 함경남도가 확실히 잠재력이 있다고, 함경남도사람들이 이악하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습니다.

이윽하여 눈내리는 차창밖을 내다보시던 그이께서는 무척 불편해하시며 자세를 고쳐앉으시더니 자신께서 지금까지 함경남도안의 공장, 기업소들을 자주 돌아보았는데 이제는 경제강국건설전망이 불보듯 명백하다고 하시면서 일군들이 앞장에 서서 군중을 조직동원하면 경제강국의 휘황한 목표를 빠른 기간에 점령할수 있다고, 사회주의경제건설의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확고한 신심과 희망을 가지고 경제강국의 령마루를 향하여 더 높이,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입고계시는것과 꼭같은 야전솜옷을 그 일군에게 입혀주시면서 꼭 맞는다고, 그 옷을 입고 절대로 쓰러지지 말라고, 바빠도 식사를 제시간에 꼭꼭 하고 건강관리도 잘하라고 거듭 당부하시였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 그 일군을 비롯한 몇몇 일군들과 함께 검소한 식탁에 마주앉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무들과 헤여지기에 앞서 식사나 한끼 나누고싶었다고 하시며 그들에게 음식을 권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보름전부터 의사선생들이 나에게 이달 25일까지는 특별히 건강에 주의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번에 함남도로 떠날 때 울면서 못 간다고 하는걸 겨우 왔는데 아직도 보름이 더 남았다고 나직히 말씀하시였습니다.

흔연하게 하시는 말씀이였지만 그이의 안색에는 피로가 짙게 어려있었습니다.

겹쌓인 과로로 불편하신 몸인데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울며 애원하며 막아나서는것도 뿌리치시고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신의 심신을 깡그리 바쳐가시는 장군님의 숭고한 애국헌신의 숨결이 그대로 야전렬차안에 뜨겁게 차넘치고있었습니다.

이날 도의 책임일군은 야전렬차를 떠나기에 앞서 위대한 장군님께 이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부디 의사선생들의 건의대로 건강을 돌보시라고 간절히 말씀올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고맙다고, 자신께서는 이렇게 일하는데 습관이 돼서 일없다고 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습니다.

《난 아직도 가야 할 곳이 많소. 내가 가야 온 나라에 승리의 불길이 타번지지 않소. 동무도 절대로 쓰러지지 말아야 하오. 건강을 잘 돌보시오.》

지금도 사람들의 눈굽을 적시게 하는 이 이야기에는 조국의 강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애국헌신의 세계가 비끼여있습니다.

이렇게 병환에 계시는 불편하신 몸으로 12월 11일 함경남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3일에 조선인민군의 어느 한 대련합부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하시고 12월 15일에는 평양시의 하나음악정보쎈터와 광복지구상업중심을 찾으시였습니다.

추운 겨울의 이른아침 하나음악정보쎈터에 도착하신 장군님을 맞이한 일군들은 기쁨에 앞서 눈물이 왈칵 솟구쳐올랐습니다.

그이께서 너무나도 수척해지신 모습으로 힘겹게 차에서 내리고계시였던것입니다.

하건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에게 또 하나의 훌륭한 문화정서생활기지를 안겨주게 된것이 그리도 기쁘신듯 이곳의 여러곳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시였으며 음악전자도서관에 열람할 자료들이 얼마 많지 못하다는것을 헤아리시고 몸소 수십년동안 품을 들여 수집하시였던 음악무용자료들까지 보내주시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크지 않은 하나음악정보쎈터를 오랜 시간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이날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과 함께 사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습니다. 자신께서는 불편하신 몸이였지만 오히려 녀성종업원들의 건강부터 생각하시며 날씨가 추우므로 돌계단에 앉지 말고 서서 사진을 찍자고, 녀성들이 감기에 들겠다고 념려하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하나음악정보쎈터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뜨거운 눈물을 삼키였습니다.

이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찬바람 몰아치는 한겨울의 맵짠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평양시 광복거리에 현대적으로 꾸려진 광복지구상업중심을 현지지도하시였습니다.

상품입고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영활동의 정보화, 수자화를 실현함으로써 봉사에서의 정확성, 신속성을 보장하고 구매자들의 편의를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할수 있게 꾸려진 광복지구상업중심의 여러 매대들을 돌아보시는 장군님의 안광에는 환한 미소가 어리였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곳의 1층부터 3층까지의 모든 매장들을 다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오늘 인민생활향상에 복무하는 새로운 상업봉사기지를 돌아보니 정말 만족하다고, 광복지구상업중심에 상품들을 가득 채워놓은것을 보니 추운 날이지만 마음이 후더워진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나는 인민을 위하여 그 무엇인가를 해놓았을 때가 제일 기쁩니다. 인민의 행복과 기쁨속에 바로 나의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안고 돌아보신 하나음악정보쎈터와 광복지구상업중심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지막으로 현지지도하신 단위로 될줄은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뿐아니라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음악정보쎈터의 종업원들과 찍으신 기념사진이 장군님의 생애에서 마지막 기념사진으로, 광복지구상업중심을 돌아보시며 하신 그이의 말씀이 현지지도길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으로 될줄 누구도 몰랐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날 밤에도 평양시민들에게 새해를 맞으며 물고기를 공급할데 대한 문건을 보아주시고 그 수송대책까지 세워주시였습니다.

다음날인 12월 17일 8시 30분,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겹쌓인 정신육체적과로로 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달리는 야전렬차에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애석하게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현지지도길을 달리던 야전렬차에서 뜻밖에 서거하시였다는 소식은 온 나라를 피눈물의 바다에 잠기게 하였으며 2011년의 12월은 장군님을 목놓아 부르는 인민의 비애의 곡성이 강산에 차넘친 피눈물의 12월로 되였습니다.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현지지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신 장군님의 애국헌신을 돌이켜보며 인민들은 더더욱 가슴을 치며 그이를 목놓아 부르고 불렀습니다.

력사를 돌이켜보면 세상에는 조국과 혁명을 위해 한생을 바친 로동계급의 수령들도 있었으며 인민을 위한 길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정치가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처럼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과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신 위인은 고금동서에 있어본적이 없었습니다.

으로 한평생 불같이 뜨거운 애국의 열정을 안으시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깡그리 불태우신 김정일장군님은 절세의 애국자, 영원한 승리의 상징이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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