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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1장. 4. 전조선통일정부수립의 나날에 -공화국의 첫 교육상이라고 불러주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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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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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    1    장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에서

4. 전조선통일정부수립의 나날에

공화국의 첫 교육상이라고 불러주시며

 

북남총선거의 성과적수행에 기초하여 1948년 9월 2일과 4일, 6~10일까지 평양에서는 력사적인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가 진행되였다. 회의에는 남조선지역에서 선거된 대의원들을 포함하여 570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이 참가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에서는 전인민적토의를 거쳐 전체 조선인민의 일치한 지지와 찬동을 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심의하고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권위양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시여 해방후 3년간 북반부에서 새 조국건설과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한 투쟁에서 이룩한 성과와 업적들을 총화하시였다. 그리고 전체 조선인민이 일일천추로 바라던 전조선의 통일적인 최고립법기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가 북남조선 전체 인민의 총의에 의해 창설된 조건에서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정권과 권한을 최고인민회의에 위양한다는것을 선언하시였다.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을 반영하여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수반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얼마나 고대하던 력사의 이 순간인가.

회의장은 삽시에 폭풍같은 환호와 격정으로 끓어번지였다.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이 온 세상에 선포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최고인민회의의 위임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조직하시였다.

공화국정부는 련합내각으로 구성되였으며 거기에는 북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이 참가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명실공히 북과 남의 전체 조선민족의 의사에 따라 인민자신이 세우고 인민의 총의와 리익을 대표하는 유일하게 합법적이며 자주적인 인민의 정권으로 탄생하였다.

남조선의 많은 애국적인사들이 공화국정부의 요직에 임명되였다. 내각성원들가운데서 절반이 남조선의 정치인들이였다. 부수상 3명가운데 2명과 최고인민회의 의장도 남조선출신이였다.

통일적이며 련립적인 전민족정부의 수립, 이것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민주주의적 전조선통일정부로선의 빛나는 승리인 동시에 민족대단결의 위대한 경륜이 낳은 고귀한 결실이였다.

주체37(1948)년 9월초 어느날이였다.

이날 백남운선생을 집무실로 불러주시고 자리를 함께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수립하게 되는 공화국정부가 실시할 교육정책의 인민적성격과 내용들이며 교육의 발전방향에 대하여 이야기하시고나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백남운선생, 중요한 부탁이 있어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과학자인데 자기의 전문과는 좀 어긋날지 모르지만 우리 나라 후대교양과 간부양성사업을 맡아주어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나라의 후대교육을 담당한 공화국 교육상을 맡아주면 고맙겠다고 하시였다.

순간 그는 크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교육자의 년한을 가지고있다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전문학교 교원으로 몇해 있은것뿐인데 수령님께서는 능력도 부족하고 모든것이 어설픈 그를 굳게 믿으시고 나라의 중대사를 맡겨주시는것이 아닌가.

너무도 아름찬 중임앞에서 망설이던 그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여 그 신임은 고맙지만 능력이 딸려 감당해낼것 같지 못하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그것을 짐작하고계신듯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그런 겸손의 말씀은 그만두십시오. 꼭 이 사업을 맡아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아예 두말 못하게 오금까지 박으시는것이였다.

그러신 후 다시 미더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시며 수령님께서는 새 나라, 새 사회건설에서 선생 같은 지식있는 간부들이 매우 귀중합니다, 우리 지혜와 힘을 합쳐 일제가 남긴 식민지노예교육의 잔재를 근본적으로 청산하고 전체 인민이 마음껏 배울수 있는 교육정책을 실시해나갑시다라고 간곡한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화국의 초대내각을 구성하시는 력사적인 자리에서 그를 공화국의 첫 교육상으로 임명하여주시였다.

그날 밤 그는 자기가 받아안은 영광과 행복이 꿈만 같고 믿어지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식민지지식인의 치욕도 맛보았고 반동들이 살판치는 남녘땅에서 번뇌에 찬 나날을 보낸적도 있는 자신이 공화국의 새 력사와 더불어 그처럼 값높은 정치적삶을 지니게 될줄 언제 한번 감히 상상이나 할수 있었던가.

그는 해방직후 홍명희, 허헌 등 애국인사들과 함께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그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김일성장군님의 초기혁명활동시기 연고자였던 최일천이 수령님의 항일혁명투쟁사를 회고하여 쓴 도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를 출판하는 일에도 발벗고 나섰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신민당의 당수로 있던 그는 평양을 다녀온 한 신민당관계자로부터 자신에 대한 크나큰 믿음이 담겨진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교시를 전달받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에서 온 남조선로동당창당준비위원회 신민당측 상무위원을 친히 만나주신 자리에서 원래 백남운선생은 량심적인 학자로서 애국적민주운동에 나선 사람입니다라고 하시면서 그가 남조선에서 진행되고있는 근로인민의 대중적당을 창립하기 위한 합동사업에 신민당 당수로서 크게 이바지하리라는 기대와 믿음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전달받은 그의 심중은 형언할수 없는 흥분과 함께 그이의 믿음에 보답할 열의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통일전선사상과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릴수 없었던 그는 3당합동에 대한 옳바른 립장과 태도를 가지고있지 못한데로부터 남조선공산당의 지도적지위를 차지하고있던 박헌영의 분파적인 배타공작에 격분한 나머지 공산당과의 합동사업을 반대하여나서게 되였다.

그는 박헌영이 신민당 당수인 자기를 배제한채 당내의 친공산당계렬만을 흡수통합하는 방식으로 로동당을 내오려 한다는것을 알게 되자 자기 당만이 아니라 인민당내의 합동보류파들까지 모두 망라시켜 남조선로동당에 대립되는 제3의 이른바 사회로동당을 내오기까지 하였다.

그에만 그친것이 아니였다. 그는 미국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미제가 남조선에 식민지지반을 구축하고 민주력량을 사분오렬시키려는 목적밑에 꾸며낸 친일파, 민족반역자들과의 《좌우합작》놀음에 은근히 기대를 걸기도 하였다. 결국 그는 민주진영으로부터 분렬주의자, 우익기회주의자로 지탄받고 정계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향방을 잃고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여버린 그가 이루 형언할수 없는 고독과 허탈감속에서 방황하고있을 때 그의 정치적생명을 구원해주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어느날 일군들을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합동문제에 대한 백남운선생의 립장과 태도가 아무리 그릇된것이라 할지라도 그를 절대로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민족적량심도 있고 애국심도 지니고있는 그가 여전히 근로민중의 통일단결을 위한 투쟁과정에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도록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하해같은 믿음은 본의아니게 나라와 민족앞에 죄를 짓고 영영 매장될번 하였던 그로 하여금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나게 한 재생의 자양분, 새 삶의 원동력이였다.

그는 분파의 산물이였던 사회로동당을 해체하고 1947년 5월 광범한 중간계층을 조직적으로 결속하는 사명을 지닌 근로인민당결성에 참가하였으며 부위원장으로 일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련석회의초청장을 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에게 보내실  때에도  그를  잊지  않으시고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초청장을 보내주시였다.

평양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그는 그 흥분의 여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무상의 영광을 받아안게 되였다. 련석회의를 위한 예비회의를 앞둔 시각에 그처럼 뵙고싶던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게 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치 오래전에 헤여졌던 구면지기를 만나신듯 다정히 이름을 불러주시며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다고 따뜻이 위로해주시면서 그의 해방전 애국적소행에 대하여 과분한 평가의 말씀을 해주시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렇듯 넓은 도량과 너그러운 인품에 감격을 금치 못하며 눈시울을 적시였다.

하기에 그는 남북련석회의의 연단을 빌어 자신만이 아닌 모든 대표들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격정까지 합쳐 이렇게 토로하였다.

《… 오늘  이  회의를  이곳에서  성립하도록  하고  또  그  성공을  미리  보장하고있는  북조선의 광휘있는 민주개혁의 제 사업을 인민의 선두에서 인도하고 통일적민주주의인민정권의 확고부동한  지반을  조성하여주신 조선민족의 영명한 령도자 김일성위원장께 감사를 드리나이다. …》

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들을 대표하여 《남조선의 현 정치정세에 대한 보고》를 그가 하게 되였을 때였다. 그는 자기의 생활체험까지 렬거해가며 미제강점하의 암담한 남조선의 정치정세를 약동하는 기상이 차넘치는 북반부와 대비하였고 김일성장군님을 민족의 수위에 높이 모신 남다른 민족적영광과 행복에 대하여 긍지높이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김일성장군님께서 력사적인 보고에서 제시하신 외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족주체의 단합된 힘으로 삼천리강토우에 통일정부를 세울데 대한 방침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앞에 조성된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가장 공명정대하면서도 유일무이한 통일방안이며 민족적량심과 애국의 넋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파와 소속,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배제하고 민족대단합에로 부르시는 그이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그러던 그해 6월 2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청사의 집무실로 그를 불러주시였다.

그를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은 무력을 동원하여 남조선에서 망국적단독선거를 감행하고 허위와 날조로 괴뢰국회를 조작하였다고, 미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들에 의하여 지금 남조선에 친일파, 민족반역자들로 구성된 괴뢰정부가 서는것이 목전에 다달았다고 하신 다음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전체 조선인민의 의사에 배치되는 놈들의 식민지적이며 매국배족적인 책동에 대하여 절대로 용납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독정부를 세울것이 아니라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들로써 전조선정부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이 남반부를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며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미제에게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 매국행위에 대하여 성명이나 발표하고 우리의 립장이나 표명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수 없습니다.

결정적인 구국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남북조선 전지역에 걸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실시하고 최고립법기관을 세우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실시하여 통일적인 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려고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그에게 남조선의 여러 정당, 사회단체대표들과 함께 오늘부터 우산장에 가서 충분히 휴식하면서 앞으로 토의하게 될 구국대책에 대하여 의논하여보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그는  마음속으로부터  솟구치는  감격의  눈물을  가까스로  삼키고  쉬셔야  할분은  빼앗긴  나라와 짓밟힌 백성들을 구원코저 수십성상이나 혈전만리를 헤쳐오시고 해방된 오늘에도 잠시의 휴식도 없이 불철주야의 심려와 로고를 다 바치고계시는 장군님이시라고 간절히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는 젊고 건강하기때문에 아직 일없다고, 앞으로 통일정부가 서면 선생과 같이 지식있는분들이 할 일이 참 많다고 하시면서 나라를 통일하고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면 건강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런데 이렇듯 공화국의 창립을 선포하시는 력사적인 자리에서 공화국의 교육상이라는 중임을 맡겨주시니 정녕 그이의 믿음과 사랑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믿음중의 믿음, 사랑중의 사랑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토록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백남운선생은 그후 과학원 원장으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면서 나라의 부강발전과 통일위업에 자기의 모든 힘과 지혜를 다 바쳐나갈수 있었다.

백남운선생의 생일 60돐이 되는 날이였다. 이날 평양시 중구역 창전동에 자리잡고있던 그의 집을 몸소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마련해주신 새 양복을 입고 달려나온 그를 우리 공화국의 첫 교육상이였다고 다정히 불러주시면서 스스럼없이 한집안식구처럼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뜨거운 격정의 파도가 방안에 넘치는 속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월남북련석회의와 민주교육의 기틀을 쌓고 나라의 과학적성과를 이룩하는 길에서 세운 그의 공적에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전후 조선문제의 평화적조정을 위한 제네바회의에 파견되였을 때에도 그렇고 특히 준엄한 전쟁시기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도 자신을 굳게 다잡고 정말 많은 일을 하였다고 분에 넘치는 평가도 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수 그의 손에 축배잔까지 들려주시면서 《부디 건강하십시오. 선생은 조국통일을 위하여 건강해야 합니다.》라고 따뜻한 축복의 말씀까지 해주시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은정은 백남운선생에게 있어서 청춘의 활력을 부어준 재생의 생명수였고 조국통일사업에 일심전력할수 있게 한 원동력이였다. 태양의 빛발아래 민족대단합의 흐름은 통일에로 노도치며 힘찬 진군을 계속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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