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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선군조선의 오늘』중에서 5. 1) 전진하는 6.15통일시대 -도도히 굽이치는 반전평화의 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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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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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선군조선의 오늘』중에서

 

5. 선군의 위력을 만방에

 1) 전진하는 6.15통일시대

도도히 굽이치는 반전평화의 대하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은 전민족적범위에서 이 땅우에 반미자주화, 반전평화수호투쟁의 불길도 세차게 지펴올렸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은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는 거족적인 투쟁을 벌려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근원을 철저히 없애야 합니다.》(《김정일선집》 제14권 425페지)

6.15북남공동선언발표이전까지만 하여도 남조선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숭미사대주의사상으로 하여 남조선사람들은 미국을 《보호자》, 《우방》으로 대하였으며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강대한 미국과 엇서는것을 두려워하면서 반미투쟁에 적극 떨쳐나서지 않았다. 결국 반미투쟁은 개별적인 인사나 청년학생, 일부 통일운동단체들이 하는것으로 되여왔고 그로 하여 남조선은 《반미무풍지대》라는 별명까지 붙게 되였다.

그러나 6.15통일시대에 들어와 남조선인민들은 자기들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미국이 그 어떤 《해방자》도 《보호자》, 《우방》도 아니며 민족의 리익과 존엄을 침해하고 유린하는 극악한 원쑤, 통일의 주되는 장애물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하기에 남조선인민들은 《친미로 망한 나라 반미로 되찾자!》라는 구호밑에 반미자주화투쟁을 대중적인 성격을 띠고 광범하게 벌렸으며 남조선은 《반미무풍지대》로부터 《반미열풍지대》, 《반미폭풍지대》로 화하였다.

오늘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우선 그 형식과 방법이 새로운 방향에서 급격한 변화를 보이며 발전하고있다.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과 시민단체들은 지난 시기의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측면들을 극복하고 집회와 시위뿐아니라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군의 민간인학살만행과 남조선강점의 부당성을 내외에 적극 알리기 위한데 중심을 두고 환경파괴와 관련한 《법》적소송투쟁, 국제인권 및 평화단체들과의 련대투쟁 그리고 군사연습결사저지투쟁과 인터네트를 통한 반미선전 등 다양한 형식의 반미투쟁을 광범히 벌려나가고있다. 《매향리주민 피해대책위원회》가 미군이 50여년간 벌리고있는 비행기폭격훈련과 관련하여 소음피해보상을 위한 《법》적소송투쟁을 줄기차게 벌려 2001년 4월 손해배상을 받아낸것과 미군기지의 단계적이전 및 철수담보를 받아낸것은 그 실례로 된다.

《한총련》대표들은 2001년 8월 근 한달동안이나 미국 백악관앞에서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철회와 남조선강점 미군의 철수를 위한 단식롱성을 벌렸다. 이어 2002년 2월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자기 대학의 700명 학생들이 서명한 항의서한을 부쉬행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미국대사관 기습시위를 단행하였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련합》소속 성원들은 2002년  3월 《련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연습을 통합한 합동군사연습에 동원되여 포항시의 한 해변가에서 상륙훈련에 참가한 미군의 장갑차들을 몸으로 막아나서며 결사저지시켰다. 또한 2005년 5월 광주 송정리에 있는 미군미싸일기지의 철조망이 끊어져나갔고 9월에는 조선침략전쟁의 괴수 맥아더의 동상을 꺼꾸러뜨리기 위한 투쟁이 세차게 벌어졌다. 미군기지철조망절단투쟁과 맥아더동상철거투쟁은 새로운 반미투쟁형태로서 남조선사회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6.15공동선언발표이후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이 종전의 우회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직접적인 대결의 방법으로 나가고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남조선에서 다양하게 벌어지고있는 반미투쟁은 부쉬를 악의 화신, 전쟁광신자로 풍자조소한 반미가요들과 반미시들이 널리 류행되고 《반미싸이버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있는데서도 표현되고있다.

남조선에서는 부쉬와 미국을 풍자하는 《기특한 과자》, 《또라이 부쉬》, 《더러운 미국》 등의 노래들과 《나의 편지》, 《부쉬한파》, 《전쟁대장》, 《성조기》, 《이상한 나라》 등의 반미시들이 창작되여 초등학교학생들에게까지 널리 보급되고있다. 인터네트에는 《반미운동본부》, 《반미공장》, 《반미미국타도위원회》 등의 싸이트들이 무수히 개설되여 공공연히 반미선전을 하고있으며 지어 반미시위를 하다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봉사하겠다는 식당들이 늘어나고있다.

또한 2002년 서울의 경희대학교에서 진행된 《아! 미국 싫어…》문화축전에는 무려 9만여명의 남조선인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반미음악회와 사진전시회 등이 진행되여 인기를 끌었다. 미국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공화국북반부지역에서 감행한 신천대학살만행을 폭로한 《MBC》방송특집 《이제는 말할수 있다》와 특별시사프로 《그들만의 재판, 미군은 무죄인가?》, 《KBS》방송의 시사프로그람 《행정협정규정, 제22조의 덫》 등도 TV를 통해 방영되여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또한 일부 지역에서 제한된 단체들만 참가하던 운동으로부터 전지역적범위에서 광범한 계층이 참가하는 대중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고있으며 많은 반미단체들이 새롭게 출현하고있다.

서울과 인천, 광주와 대전, 부산을 비롯한 남조선 곳곳에서 련이어 일어나는 반미투쟁은 참가하는 단체수나 인원수에 있어서 이전과는 대비도 할수 없을만큼 큰 규모에서 벌어지고있다. 2002년 상반년에만도 남조선 전지역에서 일어난 반미투쟁참가자수는 160여만명에 달하였다. 이것은 이 기간에 매일 평균 6.5건이상의 투쟁에 9,000여명이 참가한것으로 된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것은 남조선《국회의원》들과 당국의 공무원들까지 합세하고있는것이다.

2001년 6월 19일 서울시 룡산구와 대구시 남구를 비롯한 남조선 전지역에서 15개 자치단체들로 구성된 《미군기지주둔지역 자치체책임자협의회》는 대구에서 모임을 가지고 미군기지피해에 대한 보상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작성발표하였으며 서울시장까지도 2001년 12월 11일 서울의 룡산미군기지이전을 공개적으로 요구해나섰다. 한편 남조선의 여야당소속 《국회의원》들은 부쉬가 《악의 축》망발을 들고나와 조선반도의 정세를 긴장시키고있는것과 관련하여 2002년 2월 6일 서울주재 미국대사관을 항의방문하고 이를 반대배격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의 대중적인 반미자주화투쟁은 2002년 6월 남조선강점 미군이 나어린 두 녀중학생들을 무참히 살해한것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길가던 나어린 두 녀중학생들을 장갑차로 짓뭉개버려 무참히 학살한 미군의 야수적만행에 격분한 남조선인민들은 미국의 사죄와 남조선미국《행정협정》의 전면개정, 남조선강점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여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매일과 같이 집회와 시위들을 벌렸다.

특히 미국이 범죄자들을 무죄로 판결하자 남조선인민들은 미군사법원의 부당한 재판에 항의하여 대중적인 반미투쟁을 폭발시켰다.

2002년 11월 20일부터 27일까지의 1주일사이에만도 무려 1,000여개 단체의 연 110여만명에 달하는 남조선인민들이 반미투쟁에 떨쳐나섰다. 12월 14일에는 남조선전역의 57개 도시들에서 30여만명이 참가하는 초불시위가 있었고 21일에는 서울 종묘공원에서 제1차 미대사관 초불 인간띠잇기대회를 진행하였으며 24일에는 《효순, 미선이와 함께 하는 성탄부활의 밤》반미행사가 벌어져 온 남녘땅이 초불바다로 변했다. 그리고 한해가 다 저물어가던 12월 31일 대규모반미초불집회가 남조선의 100여개 지역과 해외의 20여개 나라들에서도 동시에 벌어졌는데 서울에서는 시민, 학생 5만여명이 참가하에 다음해 1월 1일 새벽까지 계속되였다.

광화문일대를 초불바다로 가득 채운 가운데 노래 《아리랑》의 합창으로 시작된 이날의 집회에서는 분노한 군중들이 반미구호를 웨치고 미군철수를 요구해나섰다. 철부지어린이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남녀로소가 밤가는줄 모르고 반미의 초불로 밤하늘을 불태웠다. 지어 부모의 품에 안긴 아기의 손에서도 초불이 타올랐다.

거세차게 타오른 반미초불바다, 이것은 단순히 미국에 대한 불만과 반감이 아니라 친미로 빼앗긴 민족의 자주적권리를 반미로 되찾겠다는 민족적자존심의 폭발이였다.

남조선신문 《한겨레》(2003년 6월 7일부)도 《손잡고 걷던 두 소녀의 피투성이주검》을 놓고 《6.15공동선언 1항을 가슴저리며 쓴다》고 하면서 《우리모두 초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야 할 리유가 여기에 있다》고 민족적울분을 토로하였다.

날로 거세차게 타번지는 겨레의 반미투쟁에 바빠맞은 부쉬는 2002년 12월 13일 두 녀학생살인사건에 대해 구차한 변명으로 《유감》을 표시하는 《간접사과》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남조선인민들이 추켜든 초불은 원한과 눈물의 초불만이 아니였다. 이들이 추켜든 초불은 그후 반미자주와 통일을 지향하는 홰불로 되였으며 이때부터 초불시위는 미국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항거의 표시로, 견결한 반미통일의지의 발현으로 되였다.

그후에도 해마다 남조선에서는 수백만명의 참가하에 반미반전시위와 집회들이 수백차에 걸쳐 련일 진행되였다.

2003년 한해동안에 반미초불시위만 300여차례나 진행되였는데 여기에 500여만명이 참가하였다. 2004년에는 450여만명의 각계층의 참가하에 90여차례의 집회와 2,500여건의 투쟁이 벌어졌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새로운 반미단체들의 출현으로 더욱 가속화되고있다.

2000년 6월 30일 민주로총, 《한총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참여련대 등 100여개 단체가 매향리 미군폭격장페쇄 범국민대책위원회를 조직한것을 계기로 지난 6년간 남조선에서 새로 출현한 반미운동단체들의 수는 공식 보도된것만도 170여개에 달한다.

2001년 4월 29일 남조선에서는 녀성단체로서는 처음으로 《반미녀성회》가 결성되였는데 이 단체는 매주 화요일 서울 룡산미군사령부앞에서 반미시위를 꾸준히 벌리는 한편 지역조직건설과 대중적지반을 확대강화하는 투쟁을 활발히 벌리고있다.

《반미녀성회》뿐아니다. 360개의 단체로 구성된 파병반대국민행동, 400여개의 단체가 망라된 국제반전공동행동조직위원회, 112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종교단체로 구성된 《광주공항패트리오트미싸일배치반대 광주전남공동대책위원회》 등 수많은 반미단체들이 새롭게 출현하여 반미투쟁을 벌려나가고있다.

이처럼 남조선에서 대중적인 성격을 띠고 광범하게 벌어진 반미투쟁건수는 6.15공동선언발표이후 5년동안 무려 1만 3,000여건에 달하였고 참가인원수는 연 2,000여만명에 달하였다. 이것은 그 규모나 대중성, 형태와 지속성에 있어서 6.15공동선언발표 이전에는 찾아볼수 없었던것이다.

반미는 오늘의 대세이다. 지금도 집권욕에 환장이 된 남조선의 《한나라당》을 비롯한 친미극우보수세력들은 미국상전의 옷자락에 매달려 친미사대굴종을 일삼고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세의 흐름과 민족사의 요구를 거역하고 친미굴종의식에 사로잡혀 친미에 미치고 반역질에 기승을 부리는자들에게 력사는 언제나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있다는것을 명심해야 한다.

2002년말에 있은 남조선《대통령선거》와 2004년 봄의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족자주세력, 통일애국세력의 커다란 승리가 그에 대한 뚜렷한 실증으로 된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투쟁에로 이어지고있다.

2005년에 들어와 남조선인민들은 《미군강점 60년이 되는 2005년을 자주통일, 미군철수의 원년으로 만들자!》는 구호를 들고 미군철수투쟁을 대중화하기 위한 총공세를 전면적으로 벌릴것을 선언해나섰으며 11월에는 서울과 부산에서 10여만명의 참가밑에 대규모적인 반부쉬투쟁이 벌어졌다.

남조선인민들은 반미자주화의 초불을 추켜들고 평택미군기지확장을 반대하는 투쟁도 힘차게 전개하였다.

2004년 9월 남조선의 친미사대매국세력들이 미국의 남조선강점 미군기지확장책동에 동조하여 평택땅을 내여주기로 한데 격분한 각계층 인민들은 미군기지확장예정지로 선정된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 반미반전, 평화의 초불을 더 높이 지펴올렸다.

《침략과 전쟁의 원흉 미군 물러가라!》, 《올해도 농사짓자!》는 구호밑에 2005년 7월과 12월, 그리고 2006년 2월에 미군기지확장저지를 위한 평화대행진이 3차례나 진행된것을 비롯하여 2006년 8월까지 700여차에 걸쳐 진행된 《평택주민생존권사수, 미군기지확장계획 전면재협상,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한 초불문화제》와 초불집회 등을 통해 남조선인민들은 미국의 침략책동을 분쇄하고 미군을 기어이 몰아내고야말 의지를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미군철수투쟁은 날이 감에 따라 남조선각지에서 더욱 세차게 벌어지고있다.

2007년 1월 16일 하루동안에만도 서울의 여러곳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을 비롯한 반전평화운동단체들과 통일운동단체들 그리고 향린교회 녀성교인들은 88차 반미련대집회와 시위들을 전개하면서 미군철수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1월 20일 부산에서 《2007년 반미반전전지역일군전진대회》를 가진 시민사회단체성원들과 청년학생들은 《반미반전, 미군철수 총공세로 미국의 식민지지배를 끝장내자》라고 씌여진 프랑카드를 들고 반미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한국진보련대》준비위원회와 범민련 남측본부는 2007년 6월 13일 각각 성명을 발표하여 미군이 있는 한 국민들의 불행과 고통은 절대로 가셔질수 없다고 하면서 자주평화의 초불을 높이 들고 전국민과 함께 미군철수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한편 6월 12일 《한국교회인권쎈터》도 성명을 통해 남조선강점 미군이 두 녀중학생을 살해한 이후에도 폭행과 성추행 등 온갖 범죄를 일삼고있다고 하면서 불평등한 남조선미국《행정협정》의 개정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남북공동선언실천련대를 비롯한 통일운동단체들은 2007년 7월 20일 서울의 미국대사관주변에서 《미군철수투쟁의 전면화, 대중화를 위한 운동》선포식을 가지고 지금 국민들은 자주냐 예속이냐, 통일이냐 분렬이냐, 평화냐 전쟁이냐를 판가름하는 기로에 서있다고 하면서 미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민중의 새세상을 안아오기 위해 투쟁하자고 호소하였다.

《전국대학신문기자련합》 충남지부가 실시한 조사에서 대학생들의 45%가 조선반도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주범으로 미국을 꼽았고 52.5%가 미군철수립장을 표명한 사실,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국민이 2003년 39%, 2004년 48%로부터 2005년에는 54%로 늘어났다는 남조선신문 《중앙일보》의 조사결과는 남조선인민들속에서 미군철수여론이 해마다 계속 높아지고있음을 시사해주고있다. 또한 남조선잡지 《신동아》(2002년 4월호)는 공무원의 65.5%, 전문가의 55.4%가 반미감정을 가지고있다고 하였고 남조선잡지 《시사저널》(2002년 4월 18일호)은 공군관계자의 60%이상이 《F-15K》전투기를 남조선에 강매한 미국을 비난하고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남조선에서 반미기운이 날로 고조되는데 대하여 미국의 헤리티지재단, 랜드연구소, 브루킹스연구소 등 정책연구소의 전문가들과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져널》, 《워싱톤 포스트》를 비롯한 언론들은 6.15공동선언발표이후 남조선사회가 20∼30년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면서 《한국의 신세대는 미국을 형님으로 생각하던 기성세대와 다르다》, 《반미가 미국에 대한 분노의 표시인 동시에 애국심의 표현》, 《한국에서 가장 큰 비난의 대상이였던 일본의 자리를 이제는 미국이 대신》 등으로 개탄하였다.

지어 미국내에서는 남조선강점 미군의 철수주장까지 나오고있다.

부쉬와 인맥관계가 깊은 보수파인물인 로버트 노박크는 《워싱톤 포스트》에 낸 글에서 남조선강점 미군철수를 요구하여 부쉬를 아연케 하였다. 이전 부쉬1세집권시기 국방성관리로 있던 헨리 쏘콜스키는 어느 한 토론회에서 《지금과 같은 반미상태가 계속되는 경우 미국이 남조선주둔 미군을 철수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전 백악관 관리였던 월리암 새파이어는 《뉴욕 타임스》에 낸 글에서 《미국은 남조선으로부터 미군철수를 개시하여야 한다》고 썼다.

이처럼 6.15북남공동선언과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은 오늘날 세차게 벌어지고있는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을 비상히 고조시킴으로써 반미반외세투쟁에서 민족공조의 새 기원을 열어놓았으며 미국의 핵전쟁책동을 반대하고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기 위한 전체 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형성하는데서 고무적기치로 되고있다.

정녕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가 있고 통일의 대명제인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 있어 남조선인민들은 숭미사대주의사상의 뿌리깊은 잠에서 깨여나 거세찬 반미자주화투쟁으로 통일조국의 려명을 앞당겨나가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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