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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2 장 1. 미제의 무력침공에 대처하여 -서울시 및 경기도인민관광단 성원들을 만나주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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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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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  2  장

미제의 무력침공을 물리치고 평화적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길에서

1. 미제의 무력침공에 대처하여

서울시 및 경기도인민관광단 성원들을 만나주시여

 

조국해방전쟁의 나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남녘인민의 흠모심은 날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지고있었다.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하던 나날에도, 미제의 발굽밑에 신음하던 나날에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이의 품속에 행복하게 살게 될 래일을 위해 억척같이 살아온 남녘인민들이였다.

그러던 주체39(1950)년 8월초 어느날이였다. 서울시 및 경기도인민들은 뜻밖의 경사를 맞이하게 되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인민관광단을 무어 평양으로 가게 되였던것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문화인들을 망라한 170여명의 인민관광단성원들은 공화국북반부의 자랑찬 현실과 민주건설성과를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하여 평양으로 올라왔다.

관광단의 평양방문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남반부해방지역 인민들이 공화국북반부의 현실을 직접 볼수 있게 견학을 조직하도록 할데 대하여 취해주신 조치에 의하여 이루어진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해 7월 29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남반부해방지역 인민들이 공화국북반부의 현실을 직접 보면 우리 인민민주주의제도의 우월성에 대하여 크게 감동될것이라고, 공화국남반부해방지역의 각계각층을 망라한 인민관광단을 조직하여 그들이 공화국북반부의 현실을 직접 보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친히 그와 관련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던것이다.

관광단성원들이 평양시의 여러곳을 돌아보고있던 8월 15일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그 바쁘신 속에서도 평양에 온 남녘동포들이 보고싶으시여 귀중한 시간을 내신것이다.

여기에는 서울시인민관광단 단장인 대학교수 문상민, 로동자대표인 금성방직공장 로동자 정계훈, 농민대표인 광주군의 강대준, 경기도 화성군 정남면의 김하식,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룡암리의 안종선, 문화인대표인 남조선과학자동맹 한영복, 광주군 도천소학교 교원 장경순, 학생대표인 경기공업학교 6학년 학생 김승국을 비롯한 인민관광단성원들이 참가하였다.

꿈결에도 뵙고싶던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는 순간 그들은 너무도 큰 격정에 휩싸여 저마다 그이앞으로 달려가 인사를 드리였다.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수령님께서는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하였다고 하시면서 오늘 여기로 오는 도중에 적비행기의 공습을 받았다는데 다친 사람은 없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일행중 누구도 다친 사람은 없으나 적기의 폭격에 헤여졌던 한 농민이 도착하지 못했다는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빨리 알아보아야 하겠다고 하시며 그에 대하여 물어보시였다.

그 농민은 서울에서 온 58살 난 김치범농민이였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나 악독한 일제놈들의 민족적멸시와 천대를 뼈저리게 체험한 그는 1943년경부터 김일성장군님께서 국내에 파견하신 항일혁명투사들과 련계를 가지고 그들을 물심량면으로 도와주었으며 해방후에는 온 가족을 조국통일의 길에 나서도록 한 애국농민이였다.

김치범농민의 지나온 생활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그 농민이 보고싶다고 하시면서 아무리 시간이 바쁘더라도 그 농민을 좀 기다려보자고 하시였다.

바로 그 시각에 김치범농민은 평양시의 어느 한 병원에 가있었다. 적기의 폭격이 끝난 후 대오를 찾다가 폭격에 무너진 어느 한 유치원건물안에서 어린아이의 신음소리를 듣게 된 그는 그애를 찾아내여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던것이다.

이날 김치범농민을 기다리시던 수령님께서는 그가 나타나지 않자 근심어린 어조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것을 보니 필경 무슨 일이 있는것 같다고, 알아보아야 하겠다고 이르시고는 그 농민이 오면 자신께서 따로 만나보시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관광단성원들은 자기들의 귀를 의심하였다.

공화국북반부에 와있는 기간 김일성장군님의 인민적인 풍모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나마 들었던바였지만 장군님께서 평범한 한 농민의 일을 두고 그토록 마음쓰시는 놀라운 사실앞에서 그들이 받은 충격은 실로 큰것이였다.

커다란 감동이 물결치고있는 그들의 얼굴을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화제를 돌리시며 공화국북반부지역을 참관하려고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로동자, 농민, 청년, 문화인들을 망라한 큰 관광단을 무어가지고 온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하며 축하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자 그들은 김일성종합대학과 만경대혁명학원, 국립영화촬영소(당시), 로동신문사를 비롯한 평양시내의 교육문화기관들과 시주변의 농촌들을 돌아보면서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의 활기에 넘친 투쟁모습과 민주건설에서 달성한 성과를 목격하고 커다란 감명을 받은데 대하여 말씀드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북반부에서 지난 기간에 성과를 달성할수 있은것은 인민들이 주권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높은 애국심과 창발성을 발휘하여 민주건설을 힘있게 다그쳐왔기때문이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미제에 의하여 나라가 분렬된 후 남반부동포들을 한시도 잊은적이 없습니다. 한혈통을 이어온 하나의 민족이 서로 갈라져 사는것보다 더 큰 불행과 고통은 없습니다. 우리 인민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근 반세기동안이나 식민지노예생활을 강요당한것만 해도 가슴아픈 일인데 해방후에 또다시 조국의 절반땅을 미제에게 강점당하고 민족분렬의 고통을 겪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전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미제침략자들을 하루빨리 조국강토에서 몰아내고 나라를 통일하여야 하며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최근에만 하여도 여러가지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안들을 내놓았다고 하시면서 전쟁을 방지하고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기울인 공화국정부의 노력에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그이의 말씀에서 미제와 리승만도당에 의해 침략전쟁이 개시되는 마지막순간까지 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신 수령님의 숭고한 통일의지를 가슴뜨겁게 느끼며 관광단성원들은 한없는 경모의 마음으로 그이를 우러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수령님께서는 그러나 미제와 리승만도당은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려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요구와 의사를 반영하여 내놓은 우리의 평화적통일방안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끝내 전쟁을 도발하는것으로 대답하였다고 격분에 찬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이어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무력침공을 반대하여 우리 인민이 진행하고있는 전쟁의 정의의 성격에 대하여, 승리의 필연성에 대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주신 그이께서는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미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조국의 촌토를 끝까지 수호할것이며 조국의 통일을 반드시 실현하고야말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순간 장내에는 경탄과 흠모의 파도가 일렁이였다. 강철의 담력과 배짱, 서슬푸른 백두의 기상이 그대로 어려있는 위대한 령장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을 들으며 관광단성원들은 우리는 이미 승리한 전쟁을 하고있구나 하는 배심이 가슴그득히 차오르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관광단성원들의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침략자들과 판가리싸움을 하고있는 지금이야말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조국해방성전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할 때라고 하시면서 남반부인민들도 전쟁의 최후승리를 앞당기기 위하여 떨쳐나서야 할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남반부해방지역 인민들은 무엇보다 인민정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 민주개혁을 철저히 실시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인민위원회사업에 적극 참가하여 인민정권기관을 튼튼히 다지며 민주개혁을 수행하는데서 모범이 되며 해방지역 인민들이 전시증산투쟁을 힘있게 전개하여 전쟁승리에 필요한 물자들을 더 많이 생산보장하며 청장년들로 전시수송대를 조직하여 전선에 무기와 탄약, 식량을 날라다주는 사업을 잘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지금 서울시를 비롯하여 남반부해방지역들에서 수십만명의 청년학생들이 의용군에 탄원하고있는데 이것은 우리 청년들의 높은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청년들이 의용군에 많이 입대하여 싸우면 전쟁의 승리를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하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전체 인민이 단결하여 싸울 때만이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습니다. 남반부해방지역 인민들은 당파와 소속, 정견의 차이를 가리지 말고 공화국정부주위에 굳게 단결하여야 하며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 힘과 지혜를 다 바쳐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이어 여러분이 평양에 며칠 더 묵게 되겠는데 적항공에 각별한 주의를 돌리며 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있으면 해당 일군들에게 제기하여 제때에 해결받아야 한다고 따뜻한 어조로 당부하시였다.

남반부의 평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관광단성원들을 친히 만나주시고도 자기들의 신상까지 걱정해주시는 그이의 다심하신 사랑에 관광단성원들은 너나없이 뜨거운 눈물을 삼키면서 남반부에 돌아가서 인민들에게 공화국북반부의 민주건설성과를 널리 선전하고 전쟁승리와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겠다고 힘있게 말씀올렸다.

수령님께서는 결의가 좋다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조국이 통일되는 날까지 건강한 몸으로 잘 싸워주기 바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관광단성원들과 담화를 하시는 도중에 여러차례 김치범농민이 왔는가를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도 담화를 마치시자 또다시 한 일군에게 그가 도착하지 않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그 농민의 신상에 무슨 일이 있는것이 아닌가고 근심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현장에 나가보았는데 그 농민이 일행을 찾다가 숙소로 돌아간것 같다고 일군이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다소 마음이 놓이시는듯 그 농민을 래일 따로 만나보겠다고 하시였다.

그날 김치범농민은 유치원어린이를 병원에 맡겨놓은 후 같이 온 사람들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끝내 대오를 찾지 못하고말았다. 숙소로 돌아온 그는 관광단성원들로부터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온 이야기를 듣고 몹시 서운해하였다. 자나깨나 그리던 그이를 유독 자기만이 만나뵙지 못했다는 생각에 몹시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허나 다음순간 김일성장군님께서 자기를 두고 하신 은정깊은 말씀을 전달받은 그는 방안에 모신 그이의 초상화를 우러르며 《장군님! 한갖 농사군에 지나지 않는 저같은게 뭐길래 이다지도 마음쓰시며 극진한 은정을 베풀어주시는것입니까! …》라고 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다음날인 8월 16일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전선에 대한 지도로 일분일초가 새로우시였지만 이날 만경대고향집에서 김치범농민을 만나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는 그길로 만경대로 나가시였다.

그날 아침 김치범농민은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일군과 함께 만경대고향집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이날도 미군의 폭격으로 10시가 되여도 차는 팔동교를 넘어설수 없었다. 그리하여 때늦게야 만경대고향집에 이르게 되였다.

그때는 오전 11시가 되였을 때였다. 만경대고향집앞에서는 터밭에서 일하시던 김보현선생님께서 그를 반겨맞아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아침부터 만경대고향집에 오시여 할아버님과 함께 오전 10시가 지나도록 그가 오기를 기다리시다가 긴급한 사업이 제기되여 자리를 뜨시였던것이다.

김보현선생님께서는 그의 신상에 대하여 물으시고는 우리 장군이 얼마나 근심을 하였는지 모른다고, 나이많은 농민대표가 미국놈들의 폭격에 길을 잃어 다른 대표들과 함께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 여기에서 만나보겠다고 하면서 기다리다가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서 떠났다고, 장군은 떠나면서 나더러 대신하여 만나보라고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수령님을 만나뵙지 못하여 아쉬워하는 그에게 장군이 기다리다가 시간이 너무 지체되여 떠났으니 장군을 만난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같이 이야기나 나누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그의 지나온 생활경위를 들어주신 김보현선생님께서는 김치범농민과 함께 겸상을 하시고 점심식사를 하신 후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을 그에게 안겨주시였다.

숭고한 은정이 어린 선물을 받아안은 그는 터져나오는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장군님!》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사랑의 선물을 정히 쓰다듬고있는 그에게 장군이 이 선물을 나에게 부탁하면서 앞으로 건강한 몸으로 남조선에서 미국놈들을 내쫓고 완전자주독립을 성취할 때까지 잘 싸워달라고 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들가운데는 귀중한 도서들도 있었다. 그가 두터운 한 서적을 들어 겉표지를 넘기니 거기에는 뜻밖에도 그이께서 쓰신 친필이 있었다.

《김치범동지에게 드립니다.

                                  김 일 성 》

위대한 령도자의 미덕은 천하를 품어안는 넓은 도량, 귀천을 가리지 않는 웅심깊은 자애에 있다.

지지리 천대받고 짓눌리우는 천덕꾸러기였던 남녘의 한 농민을 이처럼 동지라고 불러주시며 귀중한 친필까지 남겨주시였으니 그것은 정녕 온 세상을 다 준대도 바꿀수 없는 절세의 위인의 고귀한 믿음과 사랑이였다.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이런가 은혜로운 민족의 태양의 빛발을 받아안고 서울로 나간 김치범농민은 수령님의 크나큰 은덕에 보답하기 위하여 온 가족이 떨쳐나 전쟁승리를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그후 그는 가족과 함께 평양으로 들어와 수령님의 높은 신임속에서 중요한 초소에서 일하면서 참다운 삶을 누리다가 여생을 마치였으며 그의 가족들도 그이께 변함없는 충정을 다 바치였다.

오늘도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느라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시며 가렬한 전화의 나날 남반부해방지역 인민들이 북반부를 참관하도록 해주시던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어리여온다.

그 나날 남반부인민들이 그이를 직접 뵈옵고 자기의 눈과 귀로 아니 심장으로, 온넋으로 받아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은 숭고한 애족애민의 사상을 지니시고 민족을 통일의 한길로 이끌어주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그이를 따르는 길에 우리 겨레의 행복한 래일이 있다는 확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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