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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 2 장 2. 전후 자주적평화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나날에 -재북인사들의 인생을 빛내주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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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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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  2  장

미제의 무력침공을 물리치고 평화적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길에서

2. 전후 자주적평화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나날에

재북인사들의 인생을 빛내주시여

 

유서깊은 평양의 모란봉에 한여름의 청신함을 함뿍 자랑하며 온갖 잎새들이 푸르러 설레이던 1956년 7월 2일이였다.

이날 모란봉극장에서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결성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여기에는 남조선의 민족자주련맹, 한국독립당, 사회당, 민족공화당, 민주국민당, 신생회, 건국청년회를 비롯한 10여개 정당, 단체들의 지도급인물들과 남조선의 전 《국회》의원, 장관들을 비롯하여 정계, 군부, 언론계, 교육계, 종교계, 녀성계의 인사들이 참가하였다.

결성식에 참가한 재북인사들은 한결같이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려는 자기들의 소청을 헤아려주시고 성대한 결성식을 가지도록 해주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에 넘쳐있었다.

두달전인 5월 23일 수령님을 만나뵈웠을 때 재북인사들은 자기들도 다가오는 통일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절박감을 느끼며 그이께 전 남조선 각계 인사들로 조국통일실현에 이바지하는 단체를 조직할 의향을 말씀드렸었다.

그 제의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그것은 전적으로 여러분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문제이라고, 우리는 여러분의 의향이 좋은 생각이라고 본다고, 여러분이 주동이 되여 다른 재북인사들과 광범히 토론하여 단체결성을 추진시키는것이 좋겠다고 흔쾌히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그들이 상설기관을 새로 내올데 대하여 합의하고 48명 공동발기인의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였을 때에는 그들의 통일의지를 높이 평가하시면서 상설기관을 내올데 대한 발기를 적극 지지해주시였으며 이렇듯 모란봉극장에서 성대한 결성식을 가질수 있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던것이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는 그 명칭이 말해주듯이 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에서 공화국북반부에 있는 이전 남조선정객들로 무어진 정치조직이였다.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고 남조선에 나간 김구, 김규식선생은 련석회의에서 제시된 과업을 실현하려는 결심으로 1948년 7월 남북련석회의참가자들을 중심으로 남조선의 80여개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을 망라하는 통일독립촉진회를 결성하였으며 공화국창건후에는 그 이름을 통일촉진협의회로 개칭하였었다. 통일촉진협의회는 미군철거와 남북협상, 평화통일을 구호로 내걸고 남조선의 정계, 사회계에서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을 적극 벌렸다. 전쟁의 발발과 함께 조직으로서의 통일촉진협의회는 해체되였으나 그가 추켜들었던 구호는 계속 실현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었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라는 명칭은 북에 들어온 남조선의 정계, 사회계인사들이 통일촉진협의회가 들었던 구호를 계속 실행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였다.

조국전선중앙위원회 대표, 홍명희부수상을 비롯한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과 남조선출신 청년학생대표 및 《국군》의거장병대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대표와 재중조선인대표 등 수많은 래빈들이 참가한 결성식에서는 안재홍선생의 개회사에 이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결성과 그 임무에 대한 조소앙선생의 보고가 있었다.

이어 여러 대표들의 토론과 축사가 있은 다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결성대회 선언서와 북남협상, 평화통일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강령과 략장(규약)이 채택되였다.

결성대회에서는 협의회 집행위원으로 오하영, 조소앙, 안재홍, 김경배, 김약수, 원세훈, 황윤호, 명제세, 박렬, 김종원, 박보렴, 박승호 등 19명이 선출되고 여기서 11명이 상무위원으로, 오하영, 조소앙, 안재홍선생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였다.

이날 결성식에 참가하여 자기들도 조국통일의 대하에 합류된 민족의 한 성원임을 가슴뜨겁게 절감한 재북인사들은 한결같이 우리모두는 한 어머니품에 안긴 자식들이다, 우리가 안긴 품은 나라와 민족앞에 죄를 진 사람들까지도 다 안아주고 길을 헛갈려 헤매이던 사람들도 다 따뜻이 품어주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품이다라고 하면서 통일위업에 한몸바칠 결의들을 다지였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결성, 그것은 진정 재북인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민족적량심과 통일의지를 분출시켜 애국애족의 길에서 값높은 삶을 빛내이도록 하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웅심깊은 사랑과 고결한 의리의 결정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와 그 회원들에게 보내신 통협결성 25돐 축하문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결성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려는 재북인사들의 뜨거운 애국심의 발현으로서 민족대단결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거족적으로 벌려나가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습니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가 결성됨으로써 재북인사들은 비록 사상과 리념, 정견이 다르지만 우리 공산주의자들과 굳게 단합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한 참다운 애국의 길에서 함께 싸워나가게 되였으며 이 길에서 보람있는 삶을 빛내여나가게 되였습니다.》

재북인사들의 자치적인 통일애국조직으로서의 통협의 결성에 큰 의의를 부여하신 수령님께서는 통협성원들에 대한 대우에도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그이의 크나큰 믿음과 은정에 의하여 최고위원 3명과 서기국장은 공화국정부의 상과 꼭같은 대우를, 상무위원들은 부상과 같은 대우를, 회원전원은 성 국장급의 대우를 받게 되였다. 그리고 박렬, 백상규 등 몇몇 인사들은 비록 직제상 상무위원은 아니였지만 상무위원들과 같은 부상대우를 받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기대와 관심, 뜨거운 사랑에 무한히 고무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성원들은 결성후부터 조국통일위업에 기여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리였다.

통협은 남조선의 《정부》와 《국회》 및 각 정당, 단체들은 물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단체들에 보내는 편지, 호소문발송, 내외기자들과의 회견, 출판선전물발간, 방송출연 등 각종 형식과 방법으로 조국통일의 절박성을 주장하고 미제와 남조선당국자들의 반통일, 반민주, 외세의존죄행을 고발단죄하는 정치선전활동을 적극화하였다.

수령님께서는 통협인사들을 인민경제대학에도 보내고 남조선과 국제정세연구에 필요한 자료보장체계도 세워주시면서 통협으로 하여금 조국통일에 기여하는 정치조직으로 힘있게 걸어나가도록 각방으로 이끌어주시였다.

그러던 주체46(1957)년 6월 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통협 최고위원인 안재홍선생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안재홍선생으로 말하면 숭미사대주의에 포로되여 8.15후 미군정당국이 요구하는대로 《반탁운동》에도 앞장섰고 《과도립법의원》조작에도 참가했으며 미군정청 민정장관직에까지 올랐던 사람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김구, 김규식 등 반공민족주의거두들까지 민족대단합대회에 불러주시는데서 큰 감동을 받은 그는 장군님을 만나뵙고싶은 념원을 담아 그이께 삼가 편지를 올리였으며 련공에로의 방향전환을 하였다.

그는 미군의 인천상륙으로 서울바닥이 폭음에 흔들리는 긴박한 그 시각 단호히 김일성장군님을 따르는 길에 늙고젊음이 따로 있겠소. 가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장군님 계신 북으로 가야 하겠소.》라고 하면서 결연히 북행길에 올랐던것이다.

안재홍선생과 마주앉으시여 나라안팎의 중요한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던 그이께서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원들가운데서 우리의 조국통일방안을 가지고 남조선에 가서 전달하고 올만 한 사람이 누구이겠는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신중히 생각을 굴리는데 그이께서는 안재홍선생이 갔다오면 좋겠지만 놈들이 눈독을 들이기에 신변이 위험해서 보낼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 사람의 말이면 안재홍의 말이나 마찬가지다 하고 인정할만 한 사람을 선발했으면 좋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백상규선생이 어떻겠는가고 하시였다.

순간 그는 저으기 놀라운 기색으로 그 사람은 이름난 대부호이고 또 다년간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니 믿을수 있겠는지 하는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렸다.

속담에 이르기를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속마음을 읽으신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내 생각에는 그가 결코 변절할 사람 같지는 않다, 사람은 우선 믿어야 한다, 사람을 믿지 않고서는 통일을 못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사람을 믿지 않고서는 통일을 못한다!

세상에 제노라고 하는 명인들, 정치가들은 많고많아도 수령님처럼 이런 위대한 경륜, 고귀한 인덕을 지닌 희세의 위인이 또 어디 있으랴.

이날에 받은 감동과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안재홍선생은 정말 장군님의 믿음처럼 절대적인 믿음은 없으며 장군님의 품보다 더 넓고 따뜻한 품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고, 그이의 말씀은 남반부에서 친미반공로선을 따라온 많은 사람들이 통일후 자기는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위구심을 깨끗이 씻어버리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두고두고 말하군 하였다.

한편 수령님의 그 하늘같은 믿음의 말씀을 전달받은 백상규선생은 비록 미제와 남조선반동들의 방해책동으로 남조선에 나가는 일이 성사되지 못하였지만 그이에 대한 한없는 감사의 정을 안고 결초보은할 각오로 통일애국사업에 헌신하였다.

언제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6(1957)년 10월 25일 협의회사업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기 위하여 통협 상무위원회 위원들을 친히 집무실로 불러주시였다.

수령님의 은정에 의하여 경치좋은 단풍계절에 금강산을 구경하고 온지 얼마 되지 않던 재북인사들은 자기들을 또다시 몸가까이 불러주시는 그이의 크나큰 사랑에 감격을 금치 못하며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걸음을 다그쳐갔다.

영광의 접견석상에는 통협 최고위원들인 안재홍, 조소앙, 오하영선생들과 서기국장 윤기섭, 상무위원들인 최동오, 엄항섭, 김효석, 송호성선생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재북인사들은 민족의 명산, 세계의 명산인 금강산구경을 친히 조직해주시고 온갖 편의를 다 보장해주도록 은정을 베풀어주신 그이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 다음 갱소년된 즐거운 마음으로 너도나도 금강산방문소감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인민들은 조국의 분렬로 인하여 금강산에 와보지 못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매우 가슴아픈 일이라고, 민족분렬의 비극을 없애기 위하여서는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재북인사들의 가슴은 뜨거운 감동으로 설레이였다. 자기들은 아름다운 금강산의 자연경치를 보며 민족적긍지를 느끼는데 그치였지만 수령님께서는 그것을 놓고 외세에 의하여 짓밟힌 나라의 절반땅을 생각하시고 조국통일부터 먼저 생각하시는것이 아닌가.

그들은 한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그이를 우러르며 자기들은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방안을 적극 지지한다고 정중히 아뢰였다.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에 대한 더욱더 굳은 의지를 가다듬으시는듯 심중한 표정을 지으시며 우리는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키며 우리 나라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어떠한 외세의 간섭도 없이 조선인민자신의 힘으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고,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면 전체 조선인민이 굳게 뭉쳐 힘찬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조국은 반드시 통일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전체 인민이 하나와 같이 굳게 단결하여 투쟁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모든 사람들이 의리를 귀중히 여기고 의리적으로 굳게 단결하는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미제와 리승만도당이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동지들사이나 이웃사이에 아무런 의리도 없다고 악선전을 하고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공화국북반부를 동경하는 남조선인민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며 날로 커가는 조국통일기운을 막아보려고 상투적으로 쓰는 수법이라고, 이러한 반공선전만 들어오던 여러분이 이제는 우리 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은 재북인사들은 자기들을 그토록 믿고 주실수 있는 사랑과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는 장군님의 믿음과 의리에 대하여 잊지 않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힘껏 싸우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진정어린 결의를 들으시고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여러분이 꼭 그렇게 하리라고 믿는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기본사명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하루속히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전개하는것이라고, 조국통일은 해내외에 있는 모든 동포들이 한결같이 떨쳐나설 때라야만 성취될수 있다고, 여러분은 남조선과 해외의 모든 동포들에게 우리의 원칙적이고도 가장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안을 널리 해설선전하며 미제의 침략책동과 리승만도당의 매국배족행위를 폭로함으로써 그들이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서게 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여러분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기본사명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남조선과 해외에 있는 각계각층 인민들과 이름있는 인사들을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서게 하는 사업을 잘해나가리라고 본다고 크나큰 믿음의 말씀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날 재북인사들을 만나주시고 하신 담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는 조국통일위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가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인 지침이였으며 고목에 꽃을 피워주는 자양분이런듯 재북인사들의 가슴에 청춘의 활력과 재생의 환희를 북돋아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생의 활력에 넘쳐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재북인사들의 사업과 생활에 언제나 크나큰 관심을 돌려주시였으며 그들이 사업에서 자그마한 성과라도 거두었을 때에는 높이 평가해주시고 내세워주시였다.

1958년 7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한 일군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요즘 날씨가 무더운데 재북인사들가운데서 앓는 사람은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일군이 나이많은분들은 삼복철이여서 좀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다 열심히 일하고있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이제는 나이가 많다보니 몸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들은 과거 남조선이나 해외에서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통치를 반대하여 제나름대로 독립운동을 하던 민족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온 이후 자기들의 생활체험과 벅찬 현실을 통하여 북의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갈라진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진정한 애국자들이라는것을 깨닫고 우리와 련공합작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에 한몸바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신 다음 나이든분들이 지난날 감옥살이에서 얻은 병때문에 고생할것이라고, 안재홍선생은 위가 나쁘고 오하영선생은 신경통으로 고생하며 조소앙선생은 관절염이 있다고 하시면서 온포휴양소가 늙은이들의 병치료와 건강회복에 아주 좋을것이므로 그들을 거기에 보내여 한달가량 휴양시키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해마다 삼복철이면 그들을 온포나 석암, 우산장 등 풍치좋은 휴양소에서 한달동안 휴양을 즐기도록 해주시였다.

한없이 고결한 의리를 지니신 수령님께서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최고위원인 안재홍선생이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매우 애석해하시며 중앙급신문들에 부고를 내고 그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크게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고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의 연단에서 그를 애국지사로 높이 내세워주시였으며 애국렬사릉이 건립되였을 때에는 그를 그곳에 안치하도록 하시였다. 수령님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세월이 멀리 흘러간 뒤에도 안재홍선생을 잊지 않으신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상이 제정되였을 때에는 그를 조국통일상수상자로 내세워주시였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운명을 끝까지 책임져주시는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고결한 덕망에 의해 재북인사들모두가 보람찬 통일애국의 길을 걸었다.

하기에 언제인가 애국렬사릉을 돌아본 한 해외교포인사는 김규식, 조소앙, 안재홍, 백남운, 리극로, 최동오, 류동열, 류영준을 비롯한 재북인사들이 이곳에 안치되여있는것을 보고 김일성주석님의 품속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따로 없고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가 따로 없으며 북과 남, 해외동포가 따로 없다.》고 하면서 자기의 흥분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남조선종교계의 한 인사도 애국렬사릉을 참관하고나서 각이한 사상과 정견, 신앙을 가지고 각이한 인생행로를 걷다가 태양의 품에안겨 진정한 애국의 길에서 삶을 빛내인 각이한 계급, 계층의 대인명사전 같기도 하다고 하였다.

이렇듯 한없이 숭고하고 따사로운 품에 재북인사들을 안아주실수 있는 믿음과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애국지사로 민족앞에 내세워주시며 영생을 안겨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고결한 의리와 은혜로운 사랑은 민족의 통일력사와 더불어 찬연히 빛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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