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예물

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 2 장 2. 전후 자주적평화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나날에 -천덕꾸러기를 나라의 영웅으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18-04-10

본문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  2  장

미제의 무력침공을 물리치고 평화적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길에서

2. 전후 자주적평화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나날에

천덕꾸러기를 나라의 영웅으로

 

195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의 정세는 매우 엄혹하였다.

제국주의자들의 음모책동으로 하여 마쟈르사태가 터지자 리승만도당은 때를 만난듯이 공화국북반부를 침략하기 위한 준비에 광분해나섰다. 미제는 저들의 태평양함대를 우리 나라 령해가까이에 끌어들이고있었으며 리승만은 《북벌》을 위한 군사행동을 할수 있도록 1956년말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라고 괴뢰군부에 명령하였다. 한편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이에 발맞추어 당과 제도의 전복을 노려 머리를 쳐들고있었다.

적들의 책동에 맞받아나가는것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혁명령도방식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경제건설의 기본로선에 기초하여 작성된 제1차 5개년계획의 첫해인 1957년인민경제계획을 철저히 수행하기 위한 전인민적인 대고조투쟁으로 적들의 공세에 맞서나가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를 위해 주체45(1956)년 12월에 소집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건설에서 혁명적대고조를 일으키기 위한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하신데 이어 12월 28일 몸소 강선제강소(당시)를 찾아가시였다.

밖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리고있었다. 도람통으로 만든 난로에 장작불을 피워놓았건만 휘넓은 창고안에는 한겨울의 랭기가 그대로 서리여있었다. 바로 그런 곳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선제강소 지도일군 및 모범로동자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협의회참가자들이 죄송함을 금치 못해하는데 수령님께서는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15년동안이나 산에서 우등불을 피워놓고 회의를 하던 사람인데 집안에다 도람통으로 만든 난로를 들여다놓고 불까지 피워놓았으면 괜찮은 수준이라고 하시며 그들을 안심시켜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다음해부터 제1차 5개년계획을 수행하게 되는데 5개년계획의 첫해인 1957년 인민경제계획은 매우 방대한 계획이라고 하시면서 1957년계획을 수행하는데서 제기되는 애로와 난관에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오늘의 형편이 어렵다고 하여 우리가 맥을 놓고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 가로놓인 엄중한 난관앞에서 주저앉아서는 안된다고, 우리 당은 혁명의 주력부대인 로동계급을 믿고있으며 동무들에게 기대를 걸고있다고, 우리는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사회주의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동무들이 다음해에 강재를 1만t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수 있다고, 공칭능력에만 매달려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소극성과 보수주의를 짓부시고 긴장한 강재문제를 풀어야 할 사람들이 다름아닌 동무들이라고 절절하게 교시하시였다.

이때였다. 작업반장으로 일하고있던 진응원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당의 요구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무조건 해내겠다고 힘있게 말씀드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계시던 수령님께서는 말씨에서 고향이 남반부임을 가려보시고 《동무는 고향이 남이구만. 부모님들은 다 계시오?》라고 물으시였다.

고향은 서울이고 그곳에 70이 가까운 늙은 어머니 한분이 계신다고 그가 말씀드리자 수령님께서는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시더니 생활에서 애로는 없는가, 공부는 어떻게 하고있는가를 세심히 알아보시였다.

그 어느 단위에 가시여서나 남반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사업과 생활을 따뜻이 돌봐주시는 그이께서는 이날에도 진응원의 사업과 생활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동무들에 대한 당의 기대는 매우 크오. 동무들은 아주 귀중한 사람들이요. 앞으로 일도 잘하고 공부도 더 잘하시오.》라고 크나큰 믿음과 고무의 말씀을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어 여러 로동자들의 말을 들으시고나서 로동자동무들과 의논할 맛이 있다고, 예비는 동무들의 머리속에 있다고, 동무들의 결의는 모두 정당하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고무해주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남반부출신일군들은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는데 이바지하여야 할 귀중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면서 남반부출신일군들을 사상적으로 견실하고 정치, 경제, 문화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지식을 소유한 우수한 민족간부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다진 맹세를 심장에 새긴 진응원은 작업반원들과 함께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불사르며 혁신의 불길을 높여 공칭능력이 6만t밖에 안되는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를 밀어내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나라앞에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는데서 전국의 앞장에 선 강선로동자들을 언제나 잊지 않고계시던 수령님께서는 1959년 2월 어느날 아침해살도 퍼지기 전에 또다시 강선을 찾으시여 로동자들의 심장마다에 천리마작업반운동의 불씨를 심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후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첫 봉화를 들고 진응원작업반성원모두가 서로 돕고 이끌면서 다같이 혁신하고 다같이 전진하는 참다운 집단으로 자라났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으로 되는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진응원작업반이 수여받을수 있도록 내세워주시였으며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에 진응원을 불러주시고 그에게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칭호를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처럼 주실수 있는 사랑과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고도 다음해 10월 제강소에 오시였을 때에는 진응원을 또다시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전번보다 몸이 좀 수척해졌다고, 일이 고달프지는 않은가고 다정하게 물어주시였다.

그가 몸은 건강하고 일도 힘들지 않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어째서 힘들지 않겠는가고, 아직은 힘들게들 일하고있다고, 몸도 잘 돌보면서 일하도록 하라고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념려해주시였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해방전 아버지를 여읜 후 열다섯살때부터 고역에 끌려다닌 그였다. 하지만 뼈빠지게 일하여도 언제 한번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적 없었다. 인민군대에 의한 서울해방과 함께 공화국의 품에 안겨서야 그는 사람다운 생활을 할수 있었다. 아무리 일하고 또 해도 힘든줄을 몰랐고 삶의 희열로 가슴은 벅차올랐다. 어제날 같으면 죽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을 자기가 오늘은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의 품속에 안겨 행복을 누리고있다고 생각하니 진응원은 목이 꽉 메여 고마움의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말았다.

그러는 그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뒤떨어진 로에 내려갔다는데 일이 어떻게 되여가는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계속 계획을 초과수행하고있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며 그의 작업복 웃주머니덮개의 구김살을 펴서 맞물려주시고 벗겨진 단추도 채워주시였다.

그이의 자애로운 손길은 마치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집을 떠날 때 멀리까지 따라나와 좋은 세상 만났으니 내 걱정은 말고 부디 잘 싸우라고 당부하면서 행장을 어루만져주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느껴져 진응원은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강선에 오실 때마다 남반부에 고향을 둔 자기를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천리마운동선구자의 영예를 계속 떨쳐나가도록 믿음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는 수령님의 크나큰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진응원은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심정으로 생산에서 새로운 기적과 위훈을 창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운동선구자의 영예를 계속 떨쳐가는 그의 작업반이 2중천리마작업반칭호를 수여받았을 때에는 못내 대견해하시였으며 작업반장인 진응원을 제2차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에 참가하도록 크나큰 믿음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되는 대회에 참가하여 주석단에 앉는 영광을 지닌 진응원은 너무도 꿈같은 영광과 행복에 가슴을 진정할수 없었다.

보고가 끝나고 토론이 시작되기 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뜻밖에도 진응원의 이름을 불러주시였다.

온 대회장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선 진응원은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진응원을 미더웁게 바라보시다가 그를 가리키시며 전체 대회참가자들에게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이 동무가 진응원동무입니다. 내가 천리마운동을 발기하자 이 동무가 첫 천리마작업반운동의 봉화를 든 동무입니다.》

순간 대회장은 떠나갈듯 한 박수소리와 격정의 파도로 끓어번졌다.

진응원은 자기를 정다운 눈길로 바라보시는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며 다함없는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친어버이사랑으로 진응원을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여 강철직장 직장장으로 내세워주시였으며 그가 60살이 되였을 때에는 은정어린 생일상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그가 사망하였을 때에는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장하도록 하시여 그의 한생을 모든 애국렬사들과 더불어 길이 빛내여주시였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선구자로 만사람의 추억속에 남아있는 진응원은 한생의 마감까지 용광로의 불앞에서 뜨거운 쇠물처럼 살아온 인간이였다.

남반부출신인 그에게 생의 활력과 열정을 안겨주시며 겨레앞에 자랑스럽게 내세워주신 우리의 수령님은 한생을 인민을 위해 다 바쳐오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그 사랑속에 진응원만이 아니라 남녘땅에서 인생의 막바지를 헤매이던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영웅으로, 주권기관의 대의원으로, 당 및 국가, 경제기관의 유능한 일군으로, 온 나라가 아는 로력혁신자로 자라났다.

진정 남반부에서 온 동무들은 앞으로 통일이 된 후에 고향에 가서 할 일이 많다고 하시며 기적과 위훈의 창조자로, 통일의 역군으로 키우기 위해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로고와 자애로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Copyright © 2001 - 2018 반제민족민주전선 《구국전선》편집국 All rights reserved.
우로